증기기관 하면 제임스 와트를 떠올리지만 최초의 발명자는 따로 있다. 프랑스 발명가 드니 파팽(1647~1712)이다. 파팽은 1675년 영국으로 건너가 ‘보일의 법칙(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을 발견한 로버트 보일의 조수가 됐다. 그는 화약을 이용한 진공 실린더 대신 물의 부피가 1300배 이상 팽창하는 수증기의 힘에 주목했다.

파팽은 1679년 증기가 새지 않도록 나사못 2개로 금속용기를 밀폐한 압력찜통을 고안했다. 뚜껑을 열 때 고온의 증기 위험은 작은 구멍을 내 해결했다. 이것이 압력솥의 원조인 파팽의 ‘스팀 다이제스터(증기 찜통)’다. 이 찜통을 응용해 1695년 증기 양수장치를 발명한 것이 증기기관의 시초다. 압력찜통은 아무리 질긴 고기도 부드럽게 익혀줘 요리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압력솥의 원리는 내부 압력을 평상시 대기압(1기압)보다 높여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열을 가하는 것이다. 보통 음식은 대기압에서 섭씨 100도면 조리되는데 압력을 2기압으로 높이면 물이 120도에서 끓게 돼 더 빨리 밥이 익는다. 반대로 기압이 낮은 산에선 100도 아래에서 물이 끓고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아 밥이 설익는다.

파팽의 찜통은 2차 세계대전 후 조리시간과 연료 절약을 위한 가정용 압력찜기로 재탄생해 주부들에게 만능조리기로 각광받게 됐다. 우리가 쓰는 압력솥은 유럽의 압력찜기를 밥솥으로 개량한 것이다. 실제로 압력솥은 일반 솥이나 전기밥솥보다 비용과 취사시간을 3분의 1 이하로 줄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전통 가마솥이 압력솥의 원리를 빼닮았다는 점이다. 무거운 뚜껑이 가마솥 안의 압력을 높여 충분히 뜸을 들이고, 둥글고 두꺼운 바닥과 얇은 가장자리는 밥이 고루 잘 익게 해준다. 가마솥 원리를 응용한 한국산 압력밥솥이 일제 코끼리밥솥을 몰아내고, 세계 30여개국에 수출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 없이 편리한 압력솥이지만 안전사고도 가끔 일어난다. 이는 찹쌀처럼 점성이 높은 음식을 조리할 때 증기 배출장치(압력추)가 막히거나, 압력이 남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뚜껑을 열 때 발생하니 주의해야 한다.

지난 주말 미국 보스턴마라톤 테러에 압력솥이 폭탄으로 이용돼 충격을 주고 있다. 압력솥 안에 장약과 함께 금속파편 못 쇠구슬 등을 가득 채워 전쟁터의 클레이모어(일명 크레모아)처럼 만들었다. 압력솥 폭탄은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사용됐고 2010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폭파 미수사건도 있었다.

압력솥 폭탄은 인터넷에 제조법이 널리 펴져 있고 방법도 단순하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길이 없다. 누군가 버린 압력솥도 눈 씻고 다시 봐야 할 세상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