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20년…삼성 DNA를 바꾸다] "이건희 회장 취임 땐 '관리의 삼성' 앞날 걱정했는데…더 큰 관리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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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서실 출신 천주욱 창의력연구소장이 본 이병철·이건희
'숫자광' 이병철
구체적인 수치 중시…길게 답변하면 핀잔…재무·관리 승승장구
'달마대사' 이건희
2~3시간 '선문답'도…관리쪽 인재 현장 배치…목표치 아닌 방향 제시
'숫자광' 이병철
구체적인 수치 중시…길게 답변하면 핀잔…재무·관리 승승장구
'달마대사' 이건희
2~3시간 '선문답'도…관리쪽 인재 현장 배치…목표치 아닌 방향 제시
![[신경영 20년…삼성 DNA를 바꾸다] "이건희 회장 취임 땐 '관리의 삼성' 앞날 걱정했는데…더 큰 관리로 도약"](https://img.hankyung.com/photo/201304/01.7349856.1.jpg)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인 천주욱 창의력연구소장(65)은 지난 11일 ‘런 삼성 포럼’에서 이 회장이 그룹을 맡게 된 1987년을 이렇게 기억했다. 천 소장은 1975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1997년까지 삼성에 몸담았다. 이 회장이 취임한 때는 삼성물산 기획부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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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회장직에 오른 1987년부터 말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천 소장은 “한 번 말문이 트이자 무섭게 쏟아냈다”고 표현했다.
그룹에 있던 참모들은 봇물 터지듯 나온 이 회장 말들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이병철 회장 때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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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달랐다. “올해 매출과 이익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고하면 “연말에 물량 밀어내기해서 숫자를 조작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매출은 선대 회장보다 덜 중요하게 여겼지만 특정 부문에선 한 술 더 떴다. 불량률이 그랬다. 이 회장은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내용을 듣자마자 “그 따위 말 필요없다.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질(質) 경영’과 함께 ‘국제화’를 외치며 이 회장의 눈높이는 더 높아졌다. 그는 삼성보다 가전 사업을 먼저 시작한 금성사와 격차를 줄였다는 보고를 받고는 “나는 금성사에 관심도 없다. 우리 경쟁자는 소니나 인텔”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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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관행도 바꿨다. 선대 회장 땐 현장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을 그룹으로 불러들였다면 이 회장은 반대로 했다. 유능한 관리 인력을 현장에 전진배치했다.
대화 방식 역시 달라졌다. 선대 회장은 똑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했고 답변도 길게 하면 싫어했다. 말이 길어지면 “김군, 왜 이렇게 말이 많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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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화 속에서 이 회장은 큰 그림을 그렸다. 숫자로 된 목표치를 얘기하기보다 가야 할 방향만 제시했다. 구체적인 전략은 그룹 참모들이 다 만들어냈다. 이 회장이 “창조경영을 하자”고 하면 회장 분신인 미래전략실에서 온갖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그렇다고 이 회장이 기존 ‘관리의 삼성’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었다. 천 소장은 “관리 인력들에게 본인이 제시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궁리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 지금처럼 발전하게 된 건 이 회장을 중심으로 삼성이 더 큰 관리로 넘어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인설/배석준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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