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력 때문에 해외 파견을 포기했다는 자책감과 스트레스로 자살한 대기업 부장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송우철 수석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 부인이 ‘유족 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2008년 7월 쿠웨이트의 한 플랜트 건설현장 시공팀장으로 임명된 A씨는 그해 10월6일부터 파견이 예정됐던 현장에 열흘 동안 출장을 다녀온 후 영어 실력이 시공팀장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하다는 부담감을 갖게 됐다. 토목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꼼꼼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A씨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12월 부장으로 승진한 뒤 회사 측에 해외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2009년 1월 서울 본사로 발령받았으나 출근 첫날 본사 건물 10층 옥상에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던 중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뛰어내렸다.

A씨는 사망 전날 부인에게 “영어를 못해 해외 파견도 못 나가는 내가 부하 직원들 앞에 어떻게 서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이 답답하고 죽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이 유족 급여와 장의비 지급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A씨가 회사 생활에 대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끝에 자살했으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