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김영환 씨(가명·51)는 지난해 초 우리미소금융재단(우리은행)에서 창업·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미소금융 대출상품을 통해 1500만원을 빌렸다. 신용등급이 7등급에 불과했지만 아무런 담보나 보증도 없이 연 4.5%에 3년간 분할상환하는 조건이었다. 3개월 이상 성실하게 상환하면서 연 1%포인트의 금리감면 혜택까지 받았다.

그런데 꾸준히 돈을 갚던 김씨는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상환을 중단했다. 나중에 국민행복기금 대상자가 되면 원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행복기금 대상자가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으니 소송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빚 상환을 요구하는 재단 관계자를 향해 윽박질렀다.

김씨와 같은 고객이 늘면서 우리은행의 미소금융 연체율(1개월 이상)은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9월 4.9% 수준이던 연체율은 작년 12월 6.1%로 뛰어오른 데 이어 올 들어선 6.7%(지난달 기준)로 높아졌다. 국민·신한·하나·기업은행 등 미소금융을 취급하는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연체 및 채무불이행 사례가 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오는 29일 행복기금 출범을 앞두고 특히 서민금융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어긋난 기대 탓이다. 실제 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바꿔드림론 등 4대 서민금융 상품 연체율은 급등하는 추세다. 서민전용 저금리 대출상품인 햇살론의 연체율은 2011년 말 4.8%에서 작년 말 9.9%로 올랐다. 같은 기간 미소금융 연체율은 3.1%에서 5.7%로 높아졌다.

문제는 서민금융 대출 상환을 거부해도 은행 입장에선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이기 때문에 연체가 되더라도 담보 압류나 변제 등 손실 보전 방법이 없다.

작년 말부터 행복기금 공약에 대한 기대로 연체하기 시작한 대부분이 채무재조정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이상 연체가 이뤄진 채무자만 행복기금 채무재조정을 받을 수 있어서다. 때문에 행복기금 수혜를 기대하고 무작정 연체를 반복, 나중에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은 행복기금 지원 대상자가 아니지만, 앞으로 추가 혜택을 기대하고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이른바 ‘버티기’ 사례도 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6개월 이상 연체하면 행복기금에서 한 번 정도 더 지원해줄 것으로 여기는 고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민금융 상품 공급이 단순한 물량 공세 식으로 운영돼 부실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며 “원점에서 서민금융 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장창민/이상은/김일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