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림동의 초라한 중소기업. 쇠를 자르고 깎는 소리가 외부로 흘러나왔다. 두꺼운 철판을 잘라 플랜트 관련 기자재를 만드는 종업원 5명의 아하엠텍이다.

이 공장 안으로 일본 바이어들이 들어섰다. 공장을 살펴본 뒤 2층 사무실로 올라서자 이들의 얼굴에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진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바닥이 흔들리자 일본 바이어들은 연신 “지진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 사무실은 작은 공장 한쪽 구석에 합판을 대서 만든 것이다. 말이 2층이지 실상은 다락방이었다. 몇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바닥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수십 평의 임차공장이지만 천막 공장이었던 도화동 임차공장보다는 훨씬 양호했다.

바이어들이 방문했을 때가 1995년. 아하엠텍이 창업한 직후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충남 당진 바닷가 부근으로 옮긴 아하엠텍은 3개 공장에 연면적 약 4만㎡의 번듯한 공장과 깨끗한 사무실을 보유한 업체로 탈바꿈했다. 안동권 아하엠텍 사장(48)은 “작년 매출은 753억원, 로컬 수출을 포함한 수출은 약 4000만달러에 달했다”고 말했다. 수출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미국 유럽 일본을 합쳐 약 10개국에 이른다.

아하엠텍이 만드는 제품은 압력용기 열교환기 등으로 수십~수백t에 이르는 거대한 제품들이다. 아파트 2층 높이가 넘는 제품이다. 직경 6m에 길이 25m인 원통형 제품은 고압의 액체·기체 등을 저장하는 압력탱크다. 평평한 철판을 자르고 원통형으로 구부린 뒤 용접하는데 이 중 정밀용접기술이 생명이다. 용접부위에 금이 가면 고압가스나 액체가 새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압력용기는 타이어 공기압의 최대 100배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제품은 석유화학·가스·정유·해수담수화플랜트·발전소 등에 쓰인다.

그 옆에선 열교환기가 제작되고 있다. 두 가지 유체 사이의 열을 교환하는 장치다. 예컨대 뜨거운 화학약품을 통 안에 담은 뒤 통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작은 파이프 속으로 냉수를 흘려보내면 화학약품의 온도는 내려가고 물의 온도는 높아진다. 이를 통해 난방 폐열회수 등을 할 수 있다. 안 사장은 “열교환기는 세계적인 화학기업인 독일 BASF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인천 천막공장에서 사업을 시작한 안 사장이 번듯한 기업을 일군 비결은 무엇일까. 충남 당진이 고향인 그는 1983년 인천기능대 기계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기계가공기능사 1급을 취득했다. 그뒤 조광공업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산업용 밸브의 기술영업을 담당하며 바이어들과 교분을 쌓았다. 그는 반도체장비가 유망하다는 생각에서 1993년 인천 도화동 천막공장에서 2명의 직원과 함께 아하정밀을 창업해 반도체장비용 금형을 만들었다. 사명 ‘아하(AHA)’는 고객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하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기계에 대한 지식과 바이어들과의 네트워크가 자산이었다.

1995년엔 인근 송림동에서 아하엠텍을 창업했다. 플랜트 기자재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안 사장의 기술개발능력을 눈여겨봐온 일본 바이어가 이 공장을 찾은 뒤 여과기와 건조기를 발주하기 시작했다. 사업확대 기회는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내수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이 회사로 주문이 몰려 공장을 4배로 확장했고 환차익도 급증했다.

몇 년 뒤엔 한국BASF가 열교환기를 발주하기 위해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이 회사를 찾아왔다. 안 사장은 “BASF는 우리보다 공장 규모가 수십 배 큰 업체를 포함해 네댓 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술력을 평가했다”며 “경쟁사엔 여러 차례 보완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우리는 한 번에 이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기술력 평가가 까다로운 독일과 일본의 테스트에 모두 합격한 것이다. 안 사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를 비롯해 UAE 일본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중 일본 거래처는 도리시마펌프, 도요, JGC, TSTK, 사사쿠라 등이다.

그는 이후 건조기, 반응기, 증류탑, 담수설비용 증발기 등을 속속 개발했다. 안 사장은 “담수 플랜트용 펌프 분야의 최대업체인 일본 도리시마펌프의 오헤 요시푸미 회장은 당진 공장을 세 번이나 찾아와 우리의 기술력을 검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원자력발전소나 해수담수화플랜트에 들어가는 초대형 고효율 펌프용 제관제품(Pump Casing)의 일관생산 체제를 갖춘 곳은 아마도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남과 차별화되는 기술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경희대 등과 산학협력이나 공동 프로젝트 추진을 통해 기술력을 축적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근면성도 한몫했다. 안 사장은 때로는 당진 본사에서 여수를 거쳐 울산에서 일을 보고 돌아올 정도로 바쁘게 현장을 누빈다. 직접 현장을 다니며 이상유무를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기계장이’의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이 이노비즈협회의 히든챔피언상, 충남도 경영대상 등을 수상한 것도 이런 부지런함과 현장 중시 경영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가 당진에 공장을 지은 것은 고향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의미도 있지만 직원들에게 더 나은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비전을 던져주고 싶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안 사장은 “우리는 플랜트 관련 기자재를 만드는 업체지만 단지 두꺼운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전통제조업이 아니라 첨단 기술을 갖춰야 할 수 있는 복합기술제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화학·발전·수처리 등 3대 플랜트 설비분야에서 균형있는 성장을 통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동차 생산방식처럼 플랜트 제작도 모듈화"

안동권 아하엠텍 사장은 과거 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싫어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고안하고 현장에 적용한다.

그가 추진 중인 ‘부품조립생산방식(PAM·Parts Assembly Manufacturing System)’도 마찬가지다. 플랜트 기자재는 현장에서 거대한 철판을 자르고 구부리고 대형 선반을 통해 가공한 뒤 이어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PAM은 이를 각각의 작은 단위로 제작한 뒤 본공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처럼 공정에 필요한 각각의 부품을 모듈화해서 조립(용접)하는 방식이다.

안 사장은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활용하는 무재고시스템(JIT-System)에서 힌트를 얻었다”며 “이런 방식으로 부품을 조립하면 생산기간을 단축하고 품질 수준은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시스템을 완성하면 수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안 사장은 “이 방식이 구축되면 해외에 작은 공장을 지어 부품을 수출한 뒤 현지에서 조립 공급할 수 있어 글로벌화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