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농구 선수로서의 점수는 30점입니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39)이 27년 농구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점수를 30점으로 매겼다.

서장훈은 21일 서울 종로구 KT 올레스퀘어에서 은퇴 기자 회견을 열고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일단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기 때문에 조용히 쉬고 싶은 것이 우선"이라며 "그동안 '국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신 팬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장훈과의 일문일답.

--은퇴 후 일정은.

▲특별한 것은 없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어서 당분간 아무 계획 없이 쉬고 싶다.

특별히 뭘 하겠다고 선수 생활을 해온 것이 아니어서 쉬믄 동안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보겠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훗날 내가 할 역할이 농구계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이틀 전에 은퇴 경기 때도 그렇고 그동안 여러 차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학 시절 연고전 버저비터 등을 얘기했지만 최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경기가 떠오르더라. 바로 휘문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공식 경기에 나가 골을 넣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했던 순간이다.

--아쉬웠던 순간은.
▲일반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난 뒤에 나선 거의 모든 경기가 다 아쉬웠다.

끝나고 나면 항상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거나 '왜 이것밖에 못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승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늘 후회하고 반성했던 것 같다.

--최근 농구 인기가 많이 떨어졌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경기력이 올라간다고 해서 농구 인기가 동반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었고 프로야구의 예를 봐도 알지만 팬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팔아야 한다.

하루아침에 농구 인기가 올라가기는 어렵다.

농구 관련 문화를 더 발전시켜서 문화를 파는 프로농구가 됐으면 좋겠다.

--안티 팬들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이기는 것이 본전이 됐다.

한 번 지더라도 나 때문인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경기를 뛰었다.

결국 예민해진 부분이 생겼을 것이고, 경기 도중에 억울한 상황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팬 여러분이 보기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그러나 좋은 경기가 최고의 팬 서비스라는 제 신념을 진정성 있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농구 인생을 점수로 매기자면.
▲이 질문은 꼭 나올 줄 알았다.

3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농구 인생에 대해 만족하는 부분보다 아쉽고 더 잘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면서도 선수 생활에 아쉬운 부분을 계속 후회하며 살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동료 선수나 라이벌은.
▲최근 많은 선후배가 전화나 문자를 주셔서 감동적인 일주일이었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와 함께 뛴 모든 선수, 동료와 선후배들 다 좋아하고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굳이 이름을 얘기하자면 어린 시절 함께 커온 (현)주엽이도 큰 의미가 있다.

가장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함께 한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선배들을 비롯한 연세대 동료 선수들도 그렇다.

또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옆에서 힘이 돼 준 (김)승현이까지 조금 더 의미가 있는 선수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외 리그에서 뛰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내 능력이 외국에서 뛸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요즘처럼 글로벌한 시대였다면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도전은 해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런 생각은 없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팬들의 몫이지 내가 강요할 부분이 아니다.

좋게 기억해주시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오래 길이길이 기억돼야 할 선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평가 중에서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농구대잔치에 나갔을 때 1~2년 정도는 좋은 평가를 많이 해주셨다.

많은 사람이 지금 나를 알아봐 주는 원동력이 된 시기라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많이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언론이 내 라이벌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언론의 평가가 경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농구를 했다는 사실을 후회한 적은.
▲경기력에 대한 후회는 계속 하겠지만 농구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농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분에 넘치게 큰 영광을 얻었다.

농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다.

--프로에 진출하면서 목표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두 세배 더 잘하고 싶었다.

득점도 1만3천점이 아니라 두 배, 세배 더 넣고 싶었다.

--목 보호대에 얽힌 사연도 있을 것 같다.

▲목 보호대는 은퇴하더라도 고이 잘 간직하겠다.

일부에서는 '뭘 저런 것을 차고 나와 유난을 떠느냐'고도 했지만 목 부상이 심각했다.

대학교 때 한 번 다치고 프로에서 또 다쳤는데 그때 병원에서는 '농구를 그만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사람 인생이 차를 타고 가다가 뒤에서 받혀도 목을 다치는 것이고 공사장 지나가다가 벽돌이 떨어져도 목을 다칠 수 있는 것 아닌가.

목을 또 다치는 것이 무서우면 그동안 해온 농구가 전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삼성에서 뛸 때 다쳤는데 이수우 트레이너가 고생하며 만들어준 목 보호대와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목 보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대학 때 인기가 오히려 독이 됐다고 생각하는지.
▲인기가 많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연세대 다닐 때도 잘생긴 형들 덕을 봤을 뿐이다.

나는 인기가 있었다기보다 유명하기만 했던 것이다.

지금 후배들도 내 대학 시절과 같은 환경에서 운동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선수들이 더 노력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아야 할 것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기사에 자기 이름이 몇 번 나온다고 해서 스타가 된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된다.

진정한 스타가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농구 외적인 면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자질을 키워야 한다.

나도 스타라는 말을 듣기는 한없이 부족하다.

후배들이 이런 부분을 유념해서 앞으로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그럼 서장훈 선수가 생각하는 스타란.
▲대중의 지대한 존경과 관심을 받고 사람들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농구계에 스타 소리를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박지성, 박찬호, 선동렬, 차범근 정도 돼야 진정한 스타다.

나를 국보라고 불러주시지만 나는 그런 호칭을 듣기에 너무 미미한 존재다.

국보라고 불리려면 국민에 큰 감동을 주거나 국위 선양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과분한 표현이지만 한편으로 영광스럽고 그런 호칭으로 불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부모님께 한 말씀 한다면.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반도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못난 아들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앞으로 남은 인생 효도 열심히 하면서 살겠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