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소국 키프로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로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내 증시도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키프로스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단기적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미국, 일본 등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올 들어 글로벌 증시가 급등한 상태에서 유럽 위기의 재부상은 상승 추세가 꺾이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일각에선 환율이 국내 수출기업에 유리하게 되면서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120일 이평선 깨고 코스피 1960 아래로

코스피지수는 20일 전날보다 19.16포인트(0.97%) 내린 1959.40에 마감했다. 이달 들어 3.31%의 하락률을 보인 코스피지수는 중단기 이동평균선인 20일선과 60일선에 이어 ‘경기선’이라 불리는 120일선마저 깨고 아래로 내려왔다. 증시가 기술적 지표상으론 완연한 하락기에 접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스닥지수도 이날 546.26을 기록, 550선을 다시 내줬다. 외국인들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3745억원, 코스닥시장에서 297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최근 5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조7087억원을 순매도했다.

◆“키프로스 영향은 제한적”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내총생산(GDP)의 0.2%를 차지하는 키프로스가 한국 증시까지 뒤흔든 것은 유로존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구제금융안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예금자에게까지 부담을 떠안기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하락,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대 채권국가인 독일이 오는 9월 총선 때문에 국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키프로스에 마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현 시점에서 사태 해결의 묘수는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키프로스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키프로스 사태는 금융시장 전체의 리스크로 확대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성훈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6월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 후속 조치인데다 이미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키프로스가 ‘정크본드’ 취급을 받고 있어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엔화 강세로 수출기업에 기회될 수도

한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던 ‘원화 강세ㆍ엔화 약세’ 현상이 반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국내 증시엔 긍정적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원ㆍ달러 환율은 최근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유로존 이슈가 겹치며 크게 반등하는 모습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원50전 오른 1116원10전에 거래를 마쳤다. 원ㆍ달러 환율은 이달 중 31원 이상 올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엔ㆍ달러 환율은 96엔으로 고점을 찍고 최근 횡보 상태다.

박중섭 대신증권 연구원은 “유로당 1.3달러가 무너지는 등 환율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 상승으로 연결돼 정보기술(IT), 자동차, 화학 등 국내 수출기업에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더구나 IT주는 외국인의 매도 공세로 인해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적 추정치는 오히려 오르는 모습이어서 반등을 모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17개 IT 기업의 올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은 지난 19일 기준 9조5405억원으로 한주 전인 12일 9조3705억원보다 1.81% 증가했다.

한편 이날 KBS MBC YTN 등 주요 방송사와 은행 전산망이 잇따라 마비되자 장 막판 이스트소프트 소프트포럼 등 보안주가 일제히 상한가를 쳤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