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살림살이가 좋아진 걸까 나빠진 걸까. 소득이 10년 새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희소식이다. 가계의 소비 여력을 뜻하는 흑자율도 최고 수준이었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쪼들렸던 가계수지가 나아졌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씀씀이가 줄어든 데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진단이 많다.

◆고용 개선이 근로소득 끌어올려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2012년 가계동향’을 보면 지난해 가구소득(전국 2인 이상)은 월평균 407만7000원으로 전년보다 6.1% 증가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취업자 증가에 힘입어 근로소득이 7.7% 늘어난 영향이 컸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지난해 취업자 수가 43만7000명 증가한 데다 임금을 많이 받는 상용근로자 비중도 높아져 소득 개선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공적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 이전소득도 5.3% 늘었다.

반면 지난해 소비지출은 월평균 245만7000원으로 전년보다 2.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3분기(1.0%)와 4분기(1.4%) 증가율은 1%대에 머물렀다. 불황으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가계의 씀씀이를 보여주는 평균소비성향은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74.1%에 머물렀다. 평균소비성향은 세금과 이자 등을 내고 남은 처분 가능 소득 가운데 얼마를 소비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소비성향 하락은 모든 소득계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소득에서 지출을 뺀 흑자액은 전년보다 18.4% 급증했다. 처분 가능 소득에서 흑자액의 비중을 뜻하는 흑자율은 25.9%로 관련 통계가 나온 뒤 가장 높았다. 소득이 높아도 가계가 지갑을 닫아버리면 돈이 돌기 어렵다. 이 과장은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소비심리가 위축됐지만 3분기보다는 다소 회복됐다”며 “소비 증가세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지는 향후 경기 여건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금·연금 부담은 늘어나

지난해 가계에 부담을 준 항목은 통신비와 주거비 등이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통신비가 6.6% 급증했다. 월세가 흔해지면서 주거·수도·광열비도 5.5% 증가했다. 불황 속에서도 의류·신발 소비는 5.9% 늘어났다. 통계청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등산화 구입 등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교통비는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자동차 구입비가 전년보다 1.3% 감소하면서다. 지난해 4분기에는 개별소비세 인하에 따라 자동차 구입비가 전년 동기 대비 27.3% 반짝 급증하기도 했다.

가계는 교육비와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 지출을 줄였다. 교육비는 정부의 유치원비와 대학등록금 지원에 힘입어 2.1% 감소했다. 무상보육 대상이 확대되면서 기타서비스 지출도 1.4% 감소했다. 정책 효과가 가계 흑자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셈이다.

세금과 연금 등 비소비지출 부담은 늘어나고 있다. 취업자가 늘면서 세금(9.7%) 연금(8.4%) 사회보험료(7.7%) 지출이 증가했다. 소득에서 미리 떼가는 항목으로 비소비지출이 늘면 소비 여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금리가 떨어지면서 이자비용 증가세는 2011년 13.0%에서 작년 8.6%로 다소 둔화됐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