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반장’ 김석동 금융위원장(사진)이 30년 공직생활을 25일 마감한다.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오후 5시 30분 이임식을 갖는다. 그는 대선이 끝난 직후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보름여 전 제출한 사표는 23일~24일께 수리될 예정이다. “내 임기가 있는데, 사의를 표명하지 않으면 새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 공직자는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게 ‘퇴진의 변’이었다.

김 위원장은 2011년 1월 취임했다. ‘김석동밖에 없다’는 주변의 천거를 이명박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첫 과제는 저축은행이란 금융시장의 뇌관 제거였다. 숱한 난제를 풀어낸 그였다. 그러나 부패와 비리로 썩은 내가 진동하는 저축은행 업계에 ‘칼’을 들이대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정면돌파’ 이외엔 다른 길이 없었다. 2011년 1월14일. 금융위는 삼화저축은행을 영업정지했다. 김 위원장은 이 결정을 불과 30분 남겨 두고서야 백용호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알렸다. 정치적으로 미리 협의하면 일을 못한다고 판단했다. 온갖 로비가 난무했을 게 뻔했다. 삼화를 시작으로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전광석화와 같이 진행됐다. 이후 1년6개월간 3차에 걸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지금까지 26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김 위원장은 평소 부하들에게 ‘정책을 추진할 때 피해가지 말고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 △론스타 처리 △서민금융 대책 △중소기업 지원 등 그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일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한 과장은 “어려울수록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게 김 위원장이 정책을 대하는 기본 자세”라며 “쉽지 않은 과제를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전투력이 생겨났다고 얘기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정책금융기관의 재편을 재임 중에 이뤄내지 못했다. 그는 “우리금융을 민영화해 금융산업의 지도가 크게 재편되길 기대했지만 여의치 않았다”며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지원할 정책금융기관 대형화를 추진할 동력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애착을 가졌던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통과를 앞두고 있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되고 있다. 이임사엔 우리금융의 조속한 민영화와 정책금융기관 재편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시련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이유야 어떻든 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마음이 무겁다”는 인간적인 고뇌를 여러번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무죄 판결을 받은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FIU) 원장이 구속됐을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한 간부는 “김 원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날만큼 위원장이 기뻐한 때가 없었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마지막으로 열린 간부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정부 부처의 간부라면 축구 감독과 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격수든 수비수든 눈앞의 볼만 따라 다니면 이길 수 없다. (고위 공직자는) 축구 감독처럼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전체적인 판을 읽으며 전략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진갑을 맞는 김 위원장은 요즘 다소 들떠 있다. 3월 말엔 한 살 연상인 부인과 함께 멕시코 쿠바 페루 브라질로 17박18일간의 남미여행을 떠난다. 진갑여행이다. 5월에 태어날 쌍둥이 손주를 품에 안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