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소재로 한 음악극…제작자·출연자로 참여

"제작자로서 허투루 작품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창작 초연극이라 개선할 점도 자꾸 보이고요.하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한 스트레스입니다."

배우 김수로(43)가 대학로에 떴다.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태산 역으로 인기를 끈 후 음악극 '유럽 블로그'를 차기작으로 택하면서다.

이 작품을 제작하고 배우로도 무대에 서는 그를 20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소 TV에서 볼 수 있는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 아니었다.

작품에 대해 한 마디, 한 마디를 뗄 때마다 진지한 고민이 묻어났다.

"무대는 제 고향이에요.영화, 드라마를 하던 사람이 대학로에 와서 연극을 한다는데, 장난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거죠.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블로그'는 그가 제작자로 참여해 이어온 연극 연작 프로젝트 '김수로 프로젝트'와 극단 연우무대의 합작품.
저마다 다른 이유로 유럽으로 떠나온 세 남자의 이야기로, 5년째 유럽에 머무는 여행자 '종일', 남모를 아픔 때문에 유럽으로 떠나온 '동욱', 바람난 여자친구를 잡으러 온 '석호'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유럽을 소재로 택했을까.

'여행'에 대해 얘기할 때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럽 여행이 대학 생활의 '로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후반 'X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무렵과 겹친다.

배낭에 여행 안내서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을 챙겨 넣고 낯선 곳으로 떠나기를 꿈꾸던 청년들에게 유럽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낭만의 세계였던 것이다.

동국대 연극과 93학번인 그에게도 유럽은 그런 곳이었다고 했다.

"제가 대학교 신입생 때 첫 여행지가 유럽이었어요.친구 셋과 배낭을 짊어지고 떠났죠. 그때 친구들이 몽땅 소매치기를 당했던 기억이 납니다.한 번은 한 집시 여인이 제 친구 가방을 들고 가려는 걸 소리 질러 막은 적도 있었고요."

실제 '유럽 블로그'에는 여행 중 한 번 경험해 봤을 법한 소재들로 촘촘히 채워졌다.

알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먹은 컵라면, 로마 한복판에서 만난 소매치기,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나눠 마신 싸구려 와인 등 여행자로 한 번쯤 경험해 봄직한 것들이다.

김수로는 작품을 위해 직접 출연진과 유럽으로 떠나기도 했다.

카메라에 담은 현지 영상은 무대 위 세 남자의 여행에 낭만을 더한다.

"야간열차를 타고 14시간을 가는데요.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기차가 달리고 있더라고요.운치가 있는 것 같아요.자고 나면 동네도, 나라도 확 바뀌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도 재밌고요.또 같이 간 배우들과 마피아 게임도 하고, 재밌는 여행이었습니다."

이재준 연출, 정민아 작가에 채동현, 김재범, 성두섭, 이규형, 조강현 등 젊은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엔 신선한 감각의 위트가 넘친다.

특히 인상적인 노래는 바람난 여자친구를 향한 노래 '1유로에 1420원'.
유학 간 여자친구에게 빌려준 돈이 396만 4천 원이었다고 꼼꼼히 계산하면서도, 돈을 갚는 순간 그것은 이별을 의미하므로 절대 그 말만은 하지 말라는 '석호'의 절규(?)에 객석에선 '빵' 웃음이 터진다.

또 종일과 동현, 석호가 '단체 카톡방'에 앞다퉈 메시지를 올리는 바람에 대화가 엉뚱하게 엉켜 버리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폭소한다.

"카톡 장면은 공연 이틀 전에 만들어진 거에요.작가가 아이디어를 내기에 그냥 하면 재미가 없고 스크린에 '카톡창'을 직접 보여주자고 했죠. 이게 그대로 적중했어요.관객이 이 장면을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하지만 창작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 만큼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했다.

한 번 만들면 계속 상영만 하면 되는 영화와는 달리, 계속 다듬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그는 재밌다고 했다.

"물론 스트레스도 많아요.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니까.그런데 그게 재밌어요.관객 얘기도 듣고, 스태프 의견도 모아 작품이 점점 나아지는 걸 보면 즐겁습니다."

이번 작품에선 궁극적으로 '여행으로 끝나지 않는 여행'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관광은 눈으로 보는 것, 여행은 마음에 남기는 것"이라는 말도 극 중에 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찌들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죠. 그런데 사실, 돌아오면 다시 똑같은 일상이 있습니다.저는 여행이 단 한 번 떠남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단비처럼 일상에 젖어 있었으면 좋겠어요.'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이를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일단 '유럽 블로그'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는 '김수로 프로젝트'의 차기작에 대해서도 벌써 구상 중이다.

6,7,8탄까지는 거의 윤곽이 잡혔다고 한다.

"멜로가 둘, 뮤지컬 둘, 연극 하나.머릿속에 다 있습니다."

'신사의 품격'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가장 핫 하고 좋은 느낌일 때" 연극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기를 얻고 영화나 드라마를 하는 게 일반적인 노선인데, 알아봐 주든 그렇지 않든 제가 조금이라도 더 주목을 받는 이때가 연극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