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세탁이나 탈세가 의심스러운 혐의거래보고(STR)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정보의 공개 및 조사 방식을 놓고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18일 FIU에 따르면 2007년 5만2474건에 불과하던 1000만원 이상 STR 건수는 2011년 32만9463건으로 급증했다. 4년간 5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2007년 99조원이던 2000만원 이상 고액현금거래보고(CTR) 금액도 2011년에는 202조원을 기록하는 등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의심스런 거래는 늘어나는데

STR과 CTR에는 마약 밀수 사기 등 각종 범죄와 관련 있는 현금거래 정보가 포함돼 있어 범죄 수사나 세금 추징 등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보량 급증에 비해 조사 인력이 부족해 방대한 정보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STR의 경우 FIU 정보분석 인력은 5년째 40여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정보 분석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7년 13.9%에 달한 분석률은 2009년 9.6%로 떨어진 데 이어 2011년에는 5.0%로 급락했다. 100건의 거래 중 5건만 들여다본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세청은 세수 확보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연간 200조원에 달하는 고액현금거래 정보, 30만건이 넘는 탈세혐의거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고액의 현금이 오가는 곳에서 탈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지난해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국세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자금 세탁이나 탈세 등이 의심스러운 고액 현금거래가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STR 및 CTR 정보는 FIU가 1차적으로 분석한 뒤 검찰 경찰 국세청 등에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FIU의 전문성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 이 원내대표는 이에 따라 CTR 정보를 국세청이 직접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토론회도 결론 못내

하지만 FIU는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와 국세청 권력 비대화 가능성 경계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대신 FIU는 방대한 ‘금융 정보에 대한 분석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세청과 공동으로 조세 관련 금융정보분석협의체를 설치, 탈세 관련 FIU 정보 활용 방안을 논의하자는 대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조세정보 분석 인력을 현재의 7명에서 28명으로 대폭 증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명순 FIU 기획행정실장은 “정보를 전부 국세청에 보여주는 방법보다는 FIU의 조세 전문인력을 보강하고 국세청과의 협조를 공고히 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고 사생활 침해 우려도 적다”고 강조했다.

야당 의원들도 이 원내대표가 발의한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 법안이 국세청과 금융위원회의 대치 속에 국회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자 18일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법안에 반대하는 금융위·법무부와 찬성하는 국세청 관세청 조세연구원 등이 설전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외환팀장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순기능과 개인정보 및 사생활 침해라는 역기능이 공존해 좀 더 면밀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FIU

금융정보분석원. 금융회사로부터 마약 밀수 사기 등 범죄와 관련 있는 자금 세탁, 불법적인 자금 해외 반출 등의 금융거래 정보를 수집·분석해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금융위원회 소속 기관. 2001년 설립됐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