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전쟁 '이중잣대'에 신흥국 뿔났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위안화 등 가치 하락엔 "인위적" 비난…엔저엔 "적절" 동조
G7도 사실상 日 '묵인'
中·브라질 등 대응 모색
15일 G20 재무회의 주목
G7도 사실상 日 '묵인'
中·브라질 등 대응 모색
15일 G20 재무회의 주목
주요 선진국 간의 논란에 그쳤던 통화전쟁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다. 통화정책과 관련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이유다. 엔저(低)를 용인한 라엘 브레이너드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의 지난 11일 발언은 중국 등 신흥국들의 통화가치 하락을 “인위적 통화가치 조정을 통한 수출 늘리기”로 비판해 온 미국의 기존 입장과 상반된다.
당장 중국과 브라질 등은 대응 방안을 찾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통화정책에 대한 미국 등 선진국의 입장은 신흥국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통화가치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중 잣대’ 들이대는 미국
미국의 입장 변화는 지난 6일 데이비드 립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의 일본 도쿄 방문에서부터 표면화됐다. 립턴 부총재는 “일본 경제가 만성적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2%의 물가 상승 목표는 적절한 것”이라며 일본의 통화정책에 힘을 실었다. IMF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기구인 데다 립턴 부총재는 미국 재무부 차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12일 미국의 주도로 나온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도 같은 맥락이다. 표면적으로 환율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국내 목표 달성을 위한 통화정책의 정당성은 확인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고용 목표치, 일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내세워 돈을 풀며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WSJ가 “미국이 선진국과 신흥국의 통화정책에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통화가치 절하는 국내 경기 회생을 위해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는 반면 신흥국들은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필립 힐더브랜드 부회장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돈을 찍어내는 것은 당연하며, 20년간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본이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것도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흥국들 대응 움직임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판단 기준이 다분히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당장 과거 미국이 종종 ‘환율 조작국’으로 지칭했던 중국이 직접적인 시장 대응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14일 달러당 6.21위안으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던 위안화 가치는 지난 11일에 작년 12월 말 수준인 6.22위안으로 완만하게 하락했다. CNBC는 “중국 인민은행이 별도의 발언 없이 직접적인 행동(인위적인 통화가치 인하)에 나섰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양적완화를 ‘환율 조작’이라고 비판해 온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도 8일 “인위적인 통화 약세가 아니라 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침체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이라며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비판했다.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한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수정해 통화 약세를 이끌어내는 것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에 타격을 준다”고 말했다. 15일 회의에서는 선진국과 신흥국들은 물론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중앙은행의 역할론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