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와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들은 울상이다. 실적이 엉망인 탓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의 푸조, 시트로앵은 각각 -4.5%, -0.3%의 순손실률(매출 대비)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탈리아 피아트의 순이익률도 2%대에 그쳤다.

이들은 환율 탓을 한다. 일본과 미국의 양적완화 때문에 유로화 가치가 높아져 수출이 힘들다는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각국이 개별 통화를 쓰면 정책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 국가들은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어 각국이 환율을 인위적으로 내릴 수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서 환율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한 데는 이런 절박함이 깔려 있다.

독일 자동차업계의 표정은 딴판이다. 독일 3대 자동차 브랜드인 폭스바겐, 다임러, BMW는 지난해 각각 6.9%, 7.6%, 10.6%의 순이익률을 기록했다. 유로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에 타격을 입는 것은 독일 업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독일 업체들은 오히려 자국 내 생산을 늘리고 있다. 투자은행 UBS는 2000년 30%였던 독일의 유럽 내 자동차 생산 비중이 올해 4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자국 통화가치가 오르면 해외 생산을 늘려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다른 나라 업체들과 다른 전략이다.

왜일까.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 기업의 경쟁력에 답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여년간 크게 오르지 않은 독일 업체들의 임금과 높은 노동 효율성이 ‘강(强)유로’의 불리함을 상쇄해준다는 것이다. 유로화가 오히려 독일을 돕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비자들은 2등 제품을 살 땐 가격을 따진다. 반면 1등 제품을 살 땐 성능이 더 중요한 변수다. 개별 국가의 환율 조정이 가능했다면, 프랑스 등의 2등 제품도 환율 절하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을 수 있다. 유로존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니 자연스레 2등 제품은 도태된다는 설명이다.

KOTRA에 따르면 독일의 세계 시장 1위 업종 수는 27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주요 판매 시장인 유럽 경제가 엉망인데도 독일 경제가 건재한 이유다. 1등 제품을 많이 만드는 게 환율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임을 한국에 잘 말해주고 있다.

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