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턱이 우리같은 서민들한테는 너무 높더라구요. 재기하려고 몸부림을 쳐도 돈이 없어 고심했는데, 극적으로 도움을 받아 너무 기쁩니다"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낙지전문점 ‘낙지방’의 배화자 사장(60)은 창업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은행의 높은 문턱에서 좌절했던 과거를 먼저 떠올렸다.

‘낙지방’은 사회연대은행과 신용카드사회공헌위원회가 공동으로 소상공인들의 재기를 돕는 창업지원사업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문을 연 1호점이다.

카드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한 여신금융협회 주축의 신용카드사회공헌위원회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2012년 8월부터 시작했다. 사회연대은행은 2001년 설립된 비영리 자활지원기관으로 창업자금 지원과 자활 교육훈련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인의 도움으로 이 사업을 우연히 알게 된 배 사장은 일할 의지와 빚을 갚을 능력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창업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세상을 혼자산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좋은 사업으로 재기를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저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배 사장은 20년간 일식집을 운영해 왔으나 일시에 가게를 잃게 됐다. 가게에 투자한 억대의 비용을 모두 잃고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창업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0대에 부모 여의고 맨손으로 일식집 사장

충주에서 태어난 배 사장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올라왔다.

동대문에 있는 가발공장에 취직한 배 사장은 죽기살기로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었다. 당시만 해도 한달 월급이 3~5만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이 돈을 받아 집에 붙여주던 배 사장은 불과 몇 년 만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19세의 나이에 세 명의 동생들을 부양하게 된 것이다.

배 사장은 가발공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직종에서 일을 하며 세 동생을 모두 키워냈다.

“부모님께서 재산은 안 물려주셨지만 나한테 생활력 강한 걸 남겨주셨어요. 인생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신거죠”

80년대 경 남대문에서 그릇 도매상을 시작한 배 사장은 10여년 사업 끝에 마련한 자금으로 90년대 중반 한남동에 상가를 임대해 일식집을 차린다.

억척스런 생활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십수평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키워냈다. 수년만에 주변가게 공간을 인수해 수십평 수준으로 넓혔다.

어느새 자녀들도 장성해 대학을 마치고 취직까지 했다. “평생 고생만 하고 애들 키우고 하다가 이제 내 노후도 준비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2~3년 더 고생하고 가게를 처분한 뒤 노후를 보내려던 계획이었어요. 마지막 노후를 위해 땀을 흘려야 하던 참이죠”

이 계획이 일시에 무너진 것은 가게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다.


수억 투자 가게 권리금 못받고 넘겨 ‘빈손 재기’

20년 가까이 운영하며 수억을 투자한 가게였다. 지난해 하반기 경매로 가게 건물이 넘어가면서 가게를 비워야 하는 상황을 맞자 배 사장은 눈앞이 캄캄했다.

“가게에 투자만 몇 억원을 했습니다. 자녀 셋 대학까지 마치고 이제 노후 준비를 하려던 차에 빈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했어요”

억척스런 생활력을 가진 배 사장이었지만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판국이었다.

“몇 달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건지려고 법원도 다니고 백방으로 노력했어요”

그러나 임대차계약에 따른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지만 가게에 대한 권리금을 별도로 받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배 사장에게 남은 것은 몇 천만원의 보증금이었다. 그나마 가게 운영 중 발생한 빚을 갚고 나자 빈손이 됐다.

“외국에는 20년이고 30년이고 대대로 물려가면서 가게를 하는데 한국은 자기 건물이 아니고서는 가게를 대대로 이어갈 수가 없더군요”

황망한 상황에서 빈손이 된 배 사장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좌절하면 그대로 인생 끝나는 거다. 어떻게든 살길을 찾고 두드리면 길이 열린다”는 믿음으로 재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가게를 열려고 해도 은행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았던 데다 사업밑천으로 들어갈 비용을 어디서 쉽게 구할 방법도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배 사장에게 지인이 사회연대은행의 창업지원사업을 알려줬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기금으로 창업자금을 빌려줘 재기를 돕는 이른바 ‘사회적 금융’을 실천하는 시민단체다.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저리로 자금을 빌려준다는 것을 알고 배 사장은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자금 지원을 신청했다.

“심사를 까다롭게 했어요. 자활의 의지가 있는지, 빚을 갚을 계획은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더군요”

심사를 통과한 배 사장은 자금을 지원받아 지난해 12월 미아동에서 낙지전문점인 ‘낙지방’을 창업하게 된다. 낙지가게를 하던 사촌에게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이미 일식집을 20년 가까이 운영한 터라 음식점을 운영하는 노하우는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회연대은행에서 봉사자가 직접 와서 가게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은지 도와준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뜻하지 않게 20년 가까이 운영한 가게를 정리하고 빈손으로 나온 상황에서도 배 사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다만 젊어서 고생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달려왔을 뿐이다.

“나이 들어 사업이 실패해서 좌절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가슴아프다”는 배 사장은 “절대로 좌절하지 말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성공의 길이 열린다”며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