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한 글로벌 경기 침체는 아직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경제·경영 전문가들은 이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대응책을 논하고 있다. 위기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그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전통경제학자들을 비난한다. 마치 자신들은 그런 사태가 일어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그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어떤 사태나 사고가 벌어지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거나, 심지어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그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경향을 사고를 미리 아는 선견지명(foresight)에 빗대어 ‘후견지명(hindsight)’이라고 말한다.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후견지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심리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운동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 감독 등도 자주 후견지명 기술을 발휘한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유명인이 되면 ‘언젠가는 크게 될 줄 알았다’고 말이다.

기업의 관리자들도 후견지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과가 뛰어났던 부하직원이 지난해에는 뜻밖에도 낮은 성과를 낸 경우, 관리자들은 ‘지난해에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부터 알아봤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 관리자가 지난해 그 직원의 실적이나 태도 등을 평가한 평가서에는 대부분 좋은 말들만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후견지명은 본능으로부터 온다. 진화론의 설명에 따르자면 사람은 생존을 위해 미래를 예측하려고 든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예측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의 뇌는 과거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후견지명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를 설명하려는 성향인 후견지명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후견지명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로부터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과거부터 그런 일들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예상대로 일이 벌어졌으니 앞으로도 자신들의 후견지명을 선견지명처럼 믿고 배우려 들지 않는다. 이들은 대인관계에서 타인들을 불쾌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소식을 가져온 사람이 입술에 침을 튀기며 설명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이 “그거, 나는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쾌하겠는가.

다른 문제점으로는 후견지명을 발휘하면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분석한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후견지명의 문제점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는데, 읽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뻔히 아는 이야기를 새로운 것처럼 말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견지명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사회·과학 이론들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사장되기도 한다.

후견지명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일이어서 자신이 후견지명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 함정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면 후견지명에 자주 빠지는 기업의 관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후견지명을 방지하려면 예언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매번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라. 그리고 실제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예측이 얼마나 잘 맞는지 확인해 보라.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예언자인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예언일기를 계속 쓰다 보면 후견지명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과거로부터 배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실제 예측 실력 향상에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주변에 있는 사람이 후견지명을 발휘해서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마다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해서 김이 빠지는가. 그런 경우에는 소식을 전하는 방식을 바꿔보자. 소식을 전하기 전에 사건의 결과가 어떨지 알아맞혀 보게 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그 사건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상대방이 예언일기를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소식을 전달하면 후견지명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