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임대료만 100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 월세 아파트가 서울 강남과 용산에 밀집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지간한 월급쟁이가 석 달은 모아야 만져볼 수 있는 돈을 매달 월세로 지불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사례1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A씨. 캐나다 교포이기도 한 A씨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아파트에 월세 450만 원을 내고 살고 있다. 가구나 전자 제품 등도 풀 옵션이어서 별다른 세간을 마련할 필요가 없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외국인 동료들도 근처에 살아 덜 외롭다고 했다.

사례2
강남구 삼성동의 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를 소유한 주부 B 씨는 얼마 전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의 임원이라는 영국 국적의 40대 남자가 세입자로 들어왔다. 그는 매달 600만 원에 달하는 월세 2년 치를 한 번에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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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서 만난 한 부동산 관계자는 “400만~500만 원이면 그나마 저렴하게 월세를 내는 축에 속한다. 1000만 원을 호가하는 집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가난해서 월세방에 산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1000만 원. 보통 직장인의 월급을 2~3개월 통째로 모아야 만져볼 수 있는 돈을 매달 집세로 지불하는 이들이 서울 용산과 강남에 수두룩하다.

부동산 리서치 전문 업체 리얼투데이가 국토해양부의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서울 아파트 월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월세(보증금을 제외한 순수 월세)가 비싼 아파트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강남·서초·용산구에서 차지했다.

월세가 가장 비싸게 거래된 아파트는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전용 146㎡로 보증금을 제외한 순수 월세만 960만 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한 용산구 한강로2가의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용산’도 임대료 수준이 높다. 초고층의 전용 189㎡가 월세 800만 원에 거래됐다.

강남도 마찬가지다. 한강 조망권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청담자이’는 전용 89㎡의 작은 규모지만 월세는 대형 수준으로 현재 보증금 630만 원, 월 630만 원에 나와 있다. 고급 주택들은 임대료가 더 비싸다. 강남구 논현동의 ‘논현아펠바움2차’는 전용 273㎡의 월세가 현재 보증금 5억 원, 월 1300만 원에 매물이 나온 상태다.

리얼투데이 양지영 팀장은 “일반 아파트는 월세 수요 대비 월세 비율이 높아 거래가 쉽지 않은 게 일반적”이라면서 “하지만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외국계 바이어 등 고급 수요가 늘면서 입지, 건물 퀄리티, 배후 수요 등을 갖춘 고급 아파트는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고액 월세를 내는 것이 특별하지 않으며 수요 또한 끊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차라리 그 돈이면 집을 사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월세 1000만 원을 내는 일명 ‘월천족(月千族)’은 대체 누구일까.

◆ 월세 1000만 원 집에 가 보니…

기자는 용산구 한강로2가에 있는 지하 7층, 지상 36층 규모의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용산’을 직접 찾아가 봤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과 주상복합 아파트의 지하가 연결돼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34층에 있는 전용 208㎡의 빈집을 둘러봤는데 실제 월세 1000만 원에 거래된 그 집이다.

얼마 전 종영된 SBS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에도 나왔다고 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우선 공간이 넓고 거실의 3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창밖 풍경이 남달랐다. 아래쪽을 보니 미군부대가 다 보였다. 한강 조망권 확보는 기본이고 북동쪽 방향으로는 멀리 코엑스의 아이파크 아파트가, 북서쪽으로는 N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와 매력적이었다. 깨끗하고 럭셔리한 새 집이고, 무엇보다 층고가 높아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외국인들이 특히 이 점을 선호한다고 했다.

기자가 찾아간 월세 1000만 원대의 아파트는 전부 외국인이 살고 있다고 현장에 동행한 오현실 동부건설 차장이 말했다. 유명 연예인들도 입주 문의를 꽤 해 왔는데 최근 영화와 드라마의 잇단 흥행으로 청춘 스타로 급부상한 한 20대 남자 배우도 이곳을 들렀지만 월세의 금액과 상관없이 330㎡(100평)대 이상의 규모를 원해 아쉽게도 계약이 불발됐다고 한다.

오 차장은 “월세로 입주하고자 하는 주 고객층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현재 가장 큰 평수에 한 선박회사 사장이 렌트로 거주하고 있다. 이 밖에 도요타자동차, 독일의 유명 공구 브랜드의 임원과 미군부대 소속 군인 등이 살고 있다. 내국인은 한 종합병원의 원장, 교포 출신의 사업가 등이 렌트로 입주했다. 최고경영자(CEO)는 보통 전용 171㎡(65평) 이상의 넓은 평수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입주자들이 월세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고 반응하지 않느냐는 말에 “전용 208㎡의 매매가가 30억 원이어서 가격 대비 그리 비싼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단순히 빈집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빌트인 시스템으로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대부분 구비해 놓았기 때문에 임시로 거주하는 이들에게 편리하다”고 말했다.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하는 용산구 동자동의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 또한 비슷한 가격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용 149㎡는 월 500만 원, 펜트하우스 181㎡는 월 700만~800만 원 수준에 나오고 있다.

분양 사무소의 김한수 소장은 “아랍·일본·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계약을 문의한다”며 “우선 서울역 부근은 지하철 1, 4호선과 통로가 연결돼 KTX·공항철도·경의선을 이용할 수 있는 역세권이라는 장점이 있어 외국계 회사 바이어들이 특히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한 내국인은 실거주보다 투자의 목적으로 매매하는 쪽이 더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매매가가 높다 보니 요트선주협회·의사협회·승마협회 등에 소속된 VVIP를 대상으로 타깃 마케팅을 했다. 매매한 이들의 거주지는 용산구·서초구·강남구가 압도적이다. 여유 자금을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렌트를 통한 임대 사업을 하는 게 수익률이 더 높다는 점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실제로 인구 총 조사 기준에 따르면 2005년 48만 명이었던 국내 거주 외국인 인구가 지난해 8월에는 140만 명까지 급증했다. 이 때문에 최근 외국인을 대상으로 주택임대사업이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외국인들은 매월 지정된 날짜에 월세를 주는 우리나라 방식과 달리 1년 치 혹은 2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주는 ‘깔세(통월세)’가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한꺼번에 목돈을 받아 월세를 떼일 걱정이 없는 장점이 있고 또 ‘깔세’로 받은 임대료를 다시 은행에 예치해 추가 수익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이처럼 ‘월천족’을 표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생활 노출을 꺼려 정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기를 원하는 연예인이나 사업가, 목돈은 다른 데 투자하고 거주는 월세로 하는 자산가, 깨끗한 새 집을 선호하고 다른 나라에서 집을 사는 부담 대신 월세를 지불하는 것이 더욱 익숙하고 편리한 외국계 기업 CEO 등이다.

◆ 외국인 계약서는 기본이 10장

한남동의 D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이태원·한남동 쪽은 평균적으로 500만~1000만 원에 거래된다. 비교적 저렴하다고 알려진 유엔빌리지 초입의 트윈빌 아파트는 179㎡가 월세 500만 원 선으로, 매매가는 현재 18억 원대에 형성돼 있다.

유엔빌리지 내부에 있는 헤렌하우스는 1200만 원, 코번하우스는 1500만 원의 월세를 받는데 유엔빌리지는 워낙에 부촌으로 유명하며 한강 조망권이 확보된 라인의 분양가만 해도 30억~40억 원대이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가격에 거래가 오간다고 했다. 그나마 저렴한 곳은 한남동의 순천향병원 방향으로 대략 방 2개에 월세 250만 원 선이다.

이태원·용산·한남동·청담동·평창동·방배동 등 아파트나 고급 빌라의 초고가 월세 계약이 활발히 진행 중인 지역의 부동산 관계자들은 세입자의 월세를 대부분 해당 회사에서 지급한다고 했다.

일전에 한 방송사의 유명 아나운서가 미국 교포 출신의 금융맨과 결혼했는데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의 고급 빌라에서 월세를 지불하고 산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겉보기와 달리 생활이 어려운 것은 아닌가?”라고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의 연봉에 집세가 포함돼 있었던 것. 굳이 자신의 목돈을 투자해 집을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영외 거주를 하게 될 때 집의 계약과 관리를 담당하는 ‘주택과’의 방침에 따라 집을 구한다. 외국인 계약 전문 부동산인 에이스렌트의 김재우 대표는 “국내 거주 미군은 보통 계급, 근무 연차, 보직별로 상이하게 30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가 월세로 책정돼 있다. 가족 수에 따라 10~20% 정도 금액이 추가가되며 미군은 ‘깔세’가 아닌 월세로 돈을 낸다”고 전했다.

이처럼 실제 ‘월천족’의 대다수는 CEO나 외국계 기업의 임원, 미군부대 관계자, 대사관 직원, 소득이 많은 금융업 종사자 등이다. 외국인은 한국의 전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고 집을 매입하기는 부담스러워 주로 렌트하는 편이다. 내국인은 해외에서 렌트로 살아본 경험이 많은 교포들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고급 주택 전문 컨설팅 업체인 ‘럭셔리 앤 하우스’의 서호석 본부장은 “고액 렌트 수요는 꾸준히 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국적 기업체 임원들은 해외에서 주택에 살았던 경험 때문에 단독주택이나 가구 수가 적은 고급 빌라를 더 선호한다. 외국인들은 특히 인테리어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우리는 보통 집을 내주는 게 계약의 전부이지만 이들은 대개 가구가 다 갖춰진 풀 옵션을 선호하고 관리비도 월세에 포함하기를 원한다. 다른 부분은 신경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외국인 학교나 통학버스 정류장 인근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으며 정원이 있는지도 챙긴다고 했다. 또한 외교관이나 고소득층 사업가들은 게스트 룸이 구비돼 있는지도 따져보고 집을 결정한다고 했다.

외국인은 대부분 회사 관계자가 기업과 연계된 부동산을 통해 계약한다. D부동산 관계자가 내민 외국인 전용 계약서를 살펴보니 세금·가전제품·보안 등 항목별로 빼곡하게 한글·영어 버전으로 계약 사항이 적혀 있었다. 넘겨보니 10장이 넘었는데 이보다 더 두꺼운 계약서도 많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한두 장에 불과한 한국식 계약서가 너무 간소하다며 놀란다고 했다. 회사나 세입자로서도 2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내다 보니 목돈이 들어가는 터라 더욱 신중하게 계약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집주인이 내부 수리비, 커튼이나 벽지 교체 비용까지 내줘야 할 때도 허다하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지역별로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이태원동 부근에는 미군이나 직장이 시청·광화문 부근인 외국계 기업 간부들이 많고 강남구 도곡동이나 삼성동 등 강남권 주상복합은 테헤란로에 직장을 둔 IT 기업 관계자나 프리랜서, 유흥업소 종사자 등이다.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은 프랑스인이나 사생활 보호를 원하는 연예인들이 주로 찾는다. 넓은 정원이 있고 비교적 한적한 분위기의 성북구나 종로구 평창동은 단독 주택이나 고급 빌라를 선호하는 대사관 관계자나 대기업 CEO, 재벌 2·3세들이 보통 1000만~2000만 원의 월세를 내고 많이 거주한다.

한편 최근 시중금리가 연 3%에도 못 미치자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목돈을 굴리고 싶은 집주인들이 자신이 보유한 아파트를 전세 계약 대신 반전세·월세로 전환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어 ‘월천족’ 또한 당분간 증가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취재=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