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자신의 전 재산을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를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우선 2조원에 가까운 돈을 전 세계 소아마비 퇴치운동에 쓰겠다는 것. 빌 게이츠 부부는 이미 1990년대 중반 저개발 국가의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자선재단을 세우고 280억달러를 출연하는 등 체계적인 실천을 해왔던 터라 이번 소식을 허언으로 여기는 일은 없는 듯하다.

69조원이나 되는 재산을 사회를 위해 내놓겠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으며, 그것이 나에게 성공을 안겨준 세상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다. ‘세상에 대한 보답’이라는 말이 새로워서는 아니다. 어쩐지 이 말은 성공이 목표가 된 시대, 성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밥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일에도 수많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농부는 물론이고 농기계를 만들고 방아를 찧고 운반하고 판매하고 밥솥을 만들고 상을 차린 사람에 이르기까지 과정 과정마다 이어진 관계가 무수하다. 그런 점에서 성공 역시 그것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을 상상할 때 온전한 의미가 살아나는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이것을 도덕적 혹은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일일이 옮기기에도 부끄러운 일들로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을 외려 민망하게 만든 공직 후보자를 보며, 국내 최고 기업 후계자의 자녀가 국제중학교에 사회적 배려 자격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느끼는 당혹감이 나만의 것은 아닌 듯싶다.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이 앞설 때 성공은 응당 누려야 할 그 무엇이 된다. 그것이 자리든 돈이든 자신이 이룬 성취에 취해 대접받고 사는 걸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곳에서, 절차적 하자가 없으니 ‘사회적 감수성’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앞서는 곳에서 공동체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위대한 성공의 기반을 뭇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여기고 타인의 안녕을 위해 기꺼이 돌려주겠다는 빌 게이츠의 공동체적 인식이 놀랍고도 부러운 까닭이다.

유은혜 <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eun1002@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