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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당인리발전소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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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40년 동안 방치됐던 파리 센 강변 기차 역사가 오르세미술관으로 바뀐 건 1986년이다. 플랫폼과 선로가 있던 곳에 들어선 전시실에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낯익은 작품들이 죽 걸려 있다.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마네 ‘피리부는 소년’ 및 ‘풀밭 위의 점심’,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쿠르베 ‘화가의 아틀리에’, 드가 ‘프리마 발레리나’…. 오르세는 ‘인상파 그림의 보고’라는 명성에 걸맞게 연 300여만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조선·제철산업 퇴조와 함께 우중충한 공업도시로 쇠락했던 스페인 북부 빌바오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이 들어서면서 예술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1만1000㎡의 전시공간을 갖춘 이 미술관은 온통 비틀어지고 굽어진 파격적 외형으로 단숨에 유명세를 탔다. 항공기 몸체에 쓰이는 3만3000여장의 티타늄 패널로 건물을 덮어 날씨와 시간에 따라 보는 느낌이 달라지게 한 것도 구경거리다. 여기에 구겐하임의 방대한 소장품을 시즌별로 바꿔 전시함으로써 매년 100만명 안팎의 관람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미술관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역시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다. 낡은 화력발전소를 손질해 탄생한 이 미술관은 붉은 벽돌로 된 외벽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전시실로 바꿨다. 1층 터빈홀 곳곳에 박혀 있던 H자 철제빔도 원형대로 보존했고, 크레인은 대형 작품을 운반할 때 쓰인다. 99m 높이의 굴뚝은 이 미술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어수선했던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되면서 이젠 한 해 40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폐허나 다름없던 발전소를 전통과 현대, 테크놀로지와 자연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서울 마포 당인리발전소의 발전시설을 지하로 넣고, 지상은 기존 건물을 활용한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중부발전과 마포구, 문화부가 작년 말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라 80만㎾급 발전시설을 2016년까지 지하에 만들고, 지상엔 ‘문화창작발전소’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은 MB의 대선공약대로 발전시설의 전면 이전을 요구해왔으나 대체부지를 찾지 못하는 바람에 ‘지상 문화시설, 지하 발전소’안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한다.

    모델은 테이트 모던이다. 발전소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 전망대와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으로 개조한다는 것이다. 전체 터의 75%인 8만8350㎡는 공원으로 만들어진다. 1930년 한국 첫 화력발전소로 완공돼 숱한 사연이 쌓인 현장을 재창조 형식으로 보존한다는 건 주목할 만한 시도다. 기왕이면 테이트 모던을 넘어서는 문화명소로 태어났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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