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결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딱딱한 틀을 갖고 있는 의사 결정, 즉 논리적인 의사 결정이죠. 또 하나는 직관적인 의사 결정입니다. 의사 결정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마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직관적인 사람은 논리의 틀을 가미하고, 반대인 사람은 직관력을 높이는 훈련을 하면 두 가지의 장점을 더해 의사 결정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KAIST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IM) 가을학기 열세 번째 시간. 김성희 KAIST 경영대학원 IT경영 교수는 의사 결정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어 역사를 바꾼 의사 결정들을 제시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故) 정주영 회장은 직관력이 뛰어난 분이었죠. 서산 간척지를 만들 때 조수 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폐(廢)유조선으로 물을 막았어요. 공기를 3년 단축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폐유조선이 뒤집어졌다고 합시다. 그 피해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처럼 직관적인 결정은 리스크가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예측보다 중요한 건 ‘미래를 위한 노력’

경제학에서 인간은 보통 미래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한다고 가정한다. 김 교수는 그 ‘합리적’이라는 가정 때문에 경제학이 자꾸 틀린다고 강조했다.

“요즘 경영학에선 ‘미래’, ‘예측’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측이라는 말의 의미가 미래를 정확히 보는 것보다는, 일반인이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파악한다는 뜻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손병두 KBS 이사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시절에 번역한 책 ‘차라리 동전을 던져라’의 원래 제목은 ‘포춘 셀러(행운을 파는 사람)’다. ‘포춘 텔러(점쟁이)’를 빗댄 말이다. 이 책은 세상 사람들이 예측을 했다가 결국 틀린 사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첫머리는 ‘세상에 20만개의 직업이 있다. 이 중 8분의 1은 점치는 직업이다. 경제학자, 경영학자, 기상 예보관 등…’으로 시작한다.

“여러분 앞에 있는 저도 마찬가지죠. 여러분도 살면서 뭔가를 예측하고 내다보는 일이 많을 겁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예측만을 늘어놓다가 맨 마지막에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서 그 원하는 미래를 통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불확실성은 예측이 아니라 ‘관리’해야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개발했을 때의 일이다. 999번 실패하고 1000번째 실험에 들어가기 전 기자 한 명이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에디슨은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전구에 불이 안 들어오게 하는 999가지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고 답했다.

“그 뒤에 이어서 나오는 말이 많이들 아시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에디슨이 그때 한 말은 ‘첫 영감이 틀리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용없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기자가 반대로 써버린 겁니다. 에디슨조차 ‘운(運)’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도 일하시면서 운과 불확실성의 중요성을 잘 느끼고 계실 것 같습니다.”

불확실성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좋은 의사 결정은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결정이 아니라,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을 높여주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약점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직관적인 의사 결정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죠. 반면 수학적인 의사 결정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결국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입니다.”

○의사결정은 직관과 논리의 조화

김 교수는 한 대에 수억원에 달하는 스포츠카가 상품으로 걸려 있는 미국 TV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참가자는 세 개의 문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문 하나 뒤에는 스포츠카가, 나머지 둘 뒤에는 염소가 한 마리씩 서 있다. 문을 선택하면 참가자는 그 문 뒤의 상품을 받게 된다.

“참가자가 문 하나를 선택하면, 사회자는 나머지 문 가운데 하나를 열어주죠. 거기엔 염소가 있습니다. 참가자는 이제 처음 결정을 유지할 것인지, 나머지 문 하나로 선택을 바꿀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 결정을 고수합니다. 바꿨다가 염소가 나오면 후회가 너무 클 것 같아서죠. 그런데 확률로 따지면 문을 바꾸는 것이 유리합니다. 처음 결정은 확률이 3분의 1이었지만 염소가 있는 문 하나를 열고 난 뒤에는 확률이 2분의 1로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직관적인 결정은 처음 결정을 고수하는 것, 논리적인 결정은 문을 바꾸는 것이겠죠. 어떤 것이 좋냐는 것은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의사결정의 순서는 보통 ‘상황 분석→문제 분석→대안 발견→대안 분석’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는 여기서 만족을 하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잠재적인 문제의 분석’입니다. 최근 경영 컨설팅의 주요 트렌드는 이 잠재 문제 분석입니다. 전제는 ‘이 세상엔 완벽한 의사결정은 없다’와 ‘모든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난다’입니다. 대처 방법은 우선 예방이 있고, 그 다음은 비상시 대처 방안을 미리 만들어두는 겁니다. 또 비상 상황을 정의하는 조건도 명확하게 구축해 놔야 하죠.”

○선입견 없이 전체를 보는 시각

부부가 주말에 데이트를 한다. 부인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하고, 남편은 야구장에 가고 싶다. 의견이 안 맞아서 다투다가 결국 남편 뜻대로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제3의 대안인 뮤지컬을 발견하고 뮤지컬로 결정했다. 그런데 막상 뮤지컬 극장에 가보니 표가 매진됐다. 이 경우 부부는 어디로 가게 될까.

“처음 결정대로라면 야구장에 가는 게 정상이겠죠.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해 보니 대다수가 극장에 가더라는 겁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CEO는 A안이, 실무진은 B안이 맞다고 생각할 때 실무진이 또 다른 C안을 끼워넣었다가 탈락시키면 B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C가 새롭게 들어가는 순간 B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생기고, 원점에서 다시 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CEO 입장에선 선입견 없이 전체를 제대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됩니다.”

○‘상식 파괴자’가 돼라

“의사 결정은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좋은 대안을 여럿 창출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대안들을 직관을 통해서든 논리를 통해서든 분석해 보는 겁니다. 다만 자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논리가 조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반대로 인수·합병(M&A)과 같이 기업 역사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는 일은 상당 부분 직관에 의존해야 하겠죠.”

김 교수는 그레고리 번스가 쓴 ‘상식파괴자’ 라는 책에서 좋은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상식파괴자는 다르게 본다’, ‘틀에서 벗어나라’,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라’,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또 하나의 상식이 돼라’ 등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는 역사상 가장 상식 파괴적인 예술가로 꼽힙니다. 두 사람의 큰 차이는 고흐가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반면, 피카소는 1973년 사망 당시 7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흐의 작품 수는 900점, 피카소는 1만3000점입니다. 피카소는 그만큼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고, 그만큼 세상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는 얘기죠. 또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얼리 어답터들에게 다가갔을 뿐이었지만 가장 유명한 상식 파괴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김성희 <KAIST 경영대학 IT경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