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금 조달 위기에 빠졌다. 국가 채무액이 법적 상한선에 걸려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됐다. 내년 초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이 동시에 이뤄지는 ‘재정절벽’ 위기와 더불어 또 다른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의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정부 부채 규모가 다음주 월요일(12월 31일)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선인 16조3940억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며 “비상조치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상조치란 보유현금과 들어오는 세금으로 정부 지출을 우선 충당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미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연방공무원의 저축계좌로 사용하고 있는 연방기금 1850억달러, 외환안정기금 230억달러 등 약 2000억달러 규모다.

○2~3개월 이내 부채 한도 확대해야

연간 1조달러 이상의 재정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은 매달 1000억달러가량의 국채를 발행, 부족한 자금을 메우고 있다.

가이트너 장관은 “비상조치를 통해 앞으로 2~3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재정절벽 협상이 불투명해 언제까지 비상조치에 의존해야 할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2~3개월 이내에 의회가 부채 상한선을 확대해주지 않으면 정부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직면한다.

최악의 경우 2011년 여름의 재정위기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백악관이 2조1000억달러에 이르는 부채 한도 증액을 요구하자 공화당은 그만큼의 재정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며 거부하다 막판에 겨우 합의했다.

당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정치권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미국의 장기 국채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춰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았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미 정부의 부채가 법적 상한선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는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년에 정부가 중기적인 재정 전망과 부채관리 해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겠다”고 경고했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당초 ‘재정절벽’ 타개 협상을 벌이면서 부채한도 상향 조정을 포함시키는 ‘일괄타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재정절벽 협상이 ‘부자증세’를 놓고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부채한도 상향 조정도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막판 ‘스몰 딜’ 가능성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경제가 재정절벽으로 굴러떨어질 날이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며 세제 감면 혜택 연장, 지출 축소, 부채한도 상향 조정 등을 망라한 ‘빅딜’은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세금이 당장 내년 1월부터 인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스몰 딜’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에서 세금 인상을 방지하는 법안을 마련해 통과시키고 하원이 이를 묵인하는 방법의 스몰 딜이 유력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 대변인 브렌든 벅은 “우리는 상원이 제안하는 것은 무엇이든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