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부도를 맞고 이혼한 뒤 2008년 조그마한 국밥집을 차렸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광우병 파동으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한강다리에서 자살을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기회를 그냥 보내지 않을 겁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을 꿈꾸면서요.”

구세군 서대문사랑방(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신모씨(60)는 암울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건 가족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5층 창가에 서서 하루에도 12번 이상 뛰어내릴 생각을 하며 절망 속에 살아온 그의 인생은 서울시 공무원의 소개로 구세군 서대문사랑방에 들어온 후 달라졌다. 신씨는 이곳에서 14 대형화물차를 몰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받은 급여 95% 이상을 저축하고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그는 대형화물차를 구입해 운송사업을 하는 ‘꿈’을 갖게 됐다.

서울시는 27일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3000여명 중 저축률이 높은 70명을 ‘올해의 저축왕’으로 선발했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기 위해 2008년부터 노숙인 저축왕 선발사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선발된 70명은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총 5억3000만원을 벌어 약 67%인 3억6000만원을 저축했다. 한 사람당 평균 771만원을 벌어 516만원을 저축한 셈이다. 신씨를 비롯한 11명은 90%가 넘는 저축률을 기록했다. 상위 10%인 7명은 같은 기간 총 6800만원을 벌어 6700만원을 저축해 98.1%의 저축률을 보였다. 8개월 동안 1000만원 이상 저축한 사람도 4명이나 됐다.

선발된 노숙인 중에는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거리에 나선 여성, 사업이 부도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혼한 후 자살을 기도했던 가장, 고아원에서 자라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을 해온 사람, 장애를 가진 노숙인도 포함됐다.

15년간 이발소를 운영하다 2007년 불의의 사고로 팔다리가 마비된 김모씨(63). 아내에게 “좋은 데로 가서 잘 살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난 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쉼터에 입소한 후 몸을 추스른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조촐한 ‘천막 이발관’을 열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꾸준히 저축해 사회로 복귀하는 게 김씨의 꿈이다.

은평구에 있는 모자가족자활쉼터 흰돌회에 살고 있는 조모씨(45·여)는 술만 먹으면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단돈 2만7000원만 갖고 삼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불안에 떨고 있는 4명의 식구를 받아준 곳은 인근의 여성센터. 조씨는 이곳에서 병원치료를 받고 흰돌회로 옮긴 후 미혼모 시설에 취직해 매달 100만원 정도 벌고 있다. 그는 이 돈으로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을 보내면서 아끼고 아껴 통장을 늘려가고 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가장으로서 어려움을 박차고 일어서 성공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세요.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조씨는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