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재계와 회동을 가진 26일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은 “당선인이 만나는 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보면 당선인이 갖고 있는 경제에 대한 단면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의 회동에 앞서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를 먼저 찾았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후 전경련을 먼저 찾은 뒤 해를 넘겨 중기중앙회를 나중에 방문했던 것과는 거꾸로다.

박 당선인의 측근인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 “당선인이 집권 기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에 더 무게 중심을 싣고 경제정책을 펴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자리 창출을 당면 과제로 내세운 박 당선인으로선 기업의 99%와 근로자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육성하지 않고선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계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박 당선인이 던진 메시지도 확실히 5년 전과는 다르다. 이명박 당선인은 당시 규제개혁을 해달라는 재계 요구에 화답하며 노무현 정부의 대못을 뽑겠다고 했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이날 재계에 ‘원칙이 바로선 자본주의’를 강조하며 “대기업부터 변해라” “경영목표가 회사의 이윤 극대화가 돼선 안된다” “공동체와의 상생을 추구해라” “골목상권 소상공인의 영역을 뺏지 말아라”는 날이 선 발언을 쏟아냈다.

당선인 측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순기능인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잘못된 관행들은 반드시 고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재계 앞에서 천명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선 기간 줄곧 강조했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를 밝힌 것이고, 대기업에 자기 희생적 결단을 요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당선인이 이날 회동에서 재계에 주문한 요구사항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경영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해서는 안된다” “한창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고용형태는 앞으로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이는 당선인이 선거 기간 여러 차례 강조한 것들로 공약으로 이미 반영돼 있다”며 “집권 후 곧바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박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기업의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쌍용차 사태처럼 대규모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경우 정부가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특별예산을 편성, 지원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고령자 고용안정 대책으로 제시한 ‘정년 60세 연장’도 공약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또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공정경쟁의 틀을 만드는 것”이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이나 골목상권을 파고들어 중기·소상공인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일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재벌 2세, 3세’라는 표현을 써가며 “서민들이 하고 있는 업종까지 뛰어들거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아니다”며 경고성 메시지도 던졌다.

박 당선인은 그러면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 투자나 경영 위축이 된다는 말은 없을 것”이라며 “미래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시적 어려움이 있으면 대기업이라도 지원해서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