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 가면 쑥갓머리산이 있다. 높이가 154m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봉우리다. 쑥갓머리 북쪽으로는 조강(祖江)이라 불리는 강이 흐른다. 남북한의 경계를 알리는 부표(浮標)를 안고 있다. 지척에서 남과 북이 단절되는 슬픈 강이다.

이곳에 전해지는 전설도 애절하다. 병자호란 때 사랑하는 기생 애기(愛妓)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평안감사는 개성 근처에서 청군에 사로잡혔다. 애기는 구사일생으로 강을 건넜지만 임을 두고 멀리 떠나지 못했다. 쑥갓머리에 날마다 올라 재회할 날을 고대했으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애기는 북녘땅이 잘 보이는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966년 이곳을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쑥갓머리산을 애기봉(愛妓峰)이라 이름지었다. 당시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며 북쪽 하늘만 쳐다보다 죽은 여인의 슬픔이나 강 하나를 넘지 못해 부모 자식이 만나지 못하는 우리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한다. 쑥갓머리산 꼭대기의 애기봉이란 비석도 박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애기봉에서 강 건너 북한땅까지는 1.8㎞에 불과하다. 전망대에선 북한 송악산이 훤히 보인다. 애기봉 일대는 전략적 요충지로 6·25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해병대가 애기봉의 소나무에 전구를 매달아 불을 밝혔다.

소나무를 이용하던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가 높이 30m짜리 철탑으로 바뀐 것은 1971년이다. 12월 초면 점등식이 열렸고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본격적인 겨울이 닥치며 한 해가 간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개성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하니 상당수의 북한 주민이 이런 느낌을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부처님 오신 날을 20여일 앞두고 맨 처음 연등을 밝혀 봉축식을 여는 곳도 애기봉이었다.
애기봉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최근 몇 년간 위기도 겪었다. 연말에 애기봉의 어둠을 밝히던 빛은 50년 만인 2004년부터 7년간 사라졌었다. 북한이 주민들을 자극한다며 중지를 요구했고,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전기가 부족해 어둠 속에 사는 북한 주민이 애기봉의 불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대형 십자가와 연등탑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불안했을 것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뒤인 2010년 애기봉엔 다시 불이 켜졌다. 작년엔 김정일 사망 때문에 불을 안 밝혔지만 지난 22일 점등식이 열렸다. 예수님 사랑이나 부처님 자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애기봉에 불이 켜졌을 때만큼은 남북 모두가 ‘착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