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투자 환경에서도 돈을 잃는 사람이 있으면 버는 사람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이 폭락했을 때 거품 붕괴에 베팅해 거액의 돈을 번 일부 헤지펀드들이 대표적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의 경영전략 변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낸 행동주의 투자자들, 그리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그리스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 등이 ‘올해 자본시장의 승자’로 꼽힌다.

◆돈 몰리는 행동주의 펀드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에게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미디어 재벌 뉴스코퍼레이션의 출판사업 분사를 이끌어낸 TCI 펀드, 민영 교도소 운영업체인 미국교정기업을 부동산투자신탁회사로 변신시킨 마르카토와 코벡스 등이 약 25%의 수익률을 올렸다.

지난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모회사인 맥그로힐의 교육사업 분사를 이끌어낸 데 이어 올해는 대형 서점업체 반스앤드노블에 투자한 자나파트너스도 2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러자 갈 곳 없는 투자금이 행동주의 펀드로 몰려들고 있다. 시장조사 회사인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현재 행동주의 펀드들이 굴리는 운용자산은 570억달러로 올해 초 510억달러보다 약 12% 늘어났다. 2008년 말 320억달러에 비해서는 78%나 불었다. 자금력이 탄탄해지면서 대담하게 대기업들을 겨냥하는 행동주의 펀드도 늘어나고 있다. 칼 아이칸은 대형 DVD 대여업체 넷플릭스를, 빌 애크먼이 이끄는 퍼싱스퀘어캐피털은 글로벌 생활용품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리스 채권 투자 대박

올해 초 그리스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는 파산 직전 상태였고 4월 총선을 앞두고 구제금융 조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조만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그리스 연립정부가 재정긴축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정대로 구제금융을 집행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S&P는 최근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선택적디폴트’에서 B-로 여섯 등급이나 올렸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 국채를 다시 담보로 인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월 그리스 국채에 과감히 투자한 헤지펀드 등 일부 투자자들은 올해 80%의 투자수익을 거뒀다고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를 인용해 보도했다. 유럽의 대표적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에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3.7%에 불과했다. 그리스 국채 투자자들이 수익을 거둔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그리스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 3월 연 44.21%에서 최근 11.20%로 떨어졌다. 국채 수익률은 국채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 행동주의 투자

activist investment.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에 투자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의결권을 확보한 뒤 경영전략의 변화,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을 이끌어내 주가를 높이는 투자전략. 2006년 한국 KT&G를 노린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시도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칼 아이칸이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