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이상 존속한 기업이라면 한 번 이상은 이미 전성기를 누렸을 법하다. 특히 최근 8년 연속 매출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는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제 전성기를 막 시작한다”고 호언하는 회사가 있다. 국내 최초로 유리밀폐용기 시장을 개척한 삼광유리(사장 황도환·64)다.

황도환 삼광유리 사장은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삼광유리호는 순항하고 있다”며 “유리 제조 전문 기업을 뛰어넘어 초일류 종합주방용품업체로 도약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유리 제조 45년 ‘외길’

삼광유리는 1967년 6월27일 설립된 삼광유리공업주식회사가 전신이다. 1993년 증권거래소 상장 후 이듬해 OCI(옛 동양제철화학) 계열사로 편입됐다. 2010년 3월 지금의 사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문패는 바꿔 달았지만 핵심 성장동력은 ‘유리’로 변함이 없다. 롯데칠성 브랜드의 대부분 병을 삼광유리가 제조한다. 하이트진로의 소주 브랜드 ‘참이슬’은 전체 물량의 70% 정도를 공급하고 있다. ‘캔’ 사업은 삼광유리를 지탱해온 또 다른 축. 하이트진로의 맥주 캔 100%를 생산한다.

형(OCI)만큼 든든한 아우(계열사)도 여럿 두고 있다. 이테크건설(종합건설업)과 오덱(자동차부품업), 군장에너지(발전업), 쿼츠테크(소재업) 등 계열사 네 곳을 합친 지난해 매출이 1조3000억원에 달한다.

○밀폐용기시장 출사표…B2C 업체로 변신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은 시작이었다. 37년간 축적한 유리병 제조 기술력 및 노하우를 앞세워 2005년 말 유리밀폐용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최초 사면결착 유리밀폐용기 브랜드 ‘글라스락’을 내놓으며 일반 소비자(B2C) 시장 공략의 포문을 열어 제쳤다.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1998년 첫선을 보인 플라스틱 밀폐용기가 구축한 철옹성을 깨는 게 과제였다.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연구·개발(R&D)에 천착하며 신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06년 9월 플라스틱 용기에 대한 환경호르몬 검출 논란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유리밀폐용기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출시 초기 싸늘했던 소비자들이 플라스틱 대신 유리를 찾기 시작했다.

정구승 삼광유리 마케팅팀장은 “글라스락 출시 전까지는 유리병과 캔을 제조하는 전형적인 B2B 회사였다”며 “친환경 유리용기 브랜드 ‘글라스락’이 당시 압도적인 점유율의 플라스틱을 제치면서 B2C 기업으로 자리잡았다”고 기억했다.

경쟁회사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발빠르게 유리밀폐용기를 만들어 삼광유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삼광유리 스스로가 철옹성이 된 덕분에 쉽게 공략을 허용하지 않았다. 글라스락은 국내는 물론 해외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덕분에 올해 10월에는 글라스락 누적 판매가 3억개를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글라스락 단일 브랜드로 올해 연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2006년(90억원)의 11배가 넘는 규모다.

글라스락의 경쟁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올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생활용품박람회 ‘앰비엔테(Ambiente)’에서 한국 기업 최초로 ‘유리제품 명품관’에 입성, 100여년 역사의 미국, 유럽 등 내로라 하는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렇게 선전하는 글라스락이 삼광유리 실적 개선의 일등공신이다. 삼광유리는 글라스락을 처음 선보인 2005년 이래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매출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삼광유리가 B2B 기업에서 B2C 기업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00% 국내 생산…‘메이드 인 코리아’ 프리미엄

삼광유리가 단시일에 경쟁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광유리는 모든 제품을 100% 국내에서 생산한다. 논산공장은 글라스락과 일반식기, 백색병을 생산한다. 천안 유리공장은 갈색병과 녹색병을 만든다. 천안 캔공장은 알루미늄 캔을, 대구공장은 스틸 캔을 각각 제조한다. 대부분 기업들이 인건비 등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과 달리 철저히 ‘메이드 인 코리아’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다.

황 사장은 “해외에서 생산·판매하는 것이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한 건 삼척동자도 알지만 품질과 고용 문제를 감안해 국내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며 “국내 공장에서 신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때문에 품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신제품 대응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리용기 제조는 ‘노하우’ 집약적인 산업이며, 숙련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한국에서만 생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리가 환경호르몬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도 경쟁력을 뒷받침해준다. 글라스락은 100% 천연 소재의 ‘유리’로 만들어져 환경호르몬 걱정이 전혀 없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천연 소재로 만들어져 재활용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쉽지 않아 폐기물 부담금이 부과되지만, 글라스락은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환경 친화적인 제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웃도어, 쿡웨어, 유아 브랜드로 ‘영토 확장’

전문가들은 삼광유리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고 조언한다. 가장 먼저 주춤해진 유리병 수요를 진작시키는 게 관건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정 팀장은 “트렌드를 읽고 일찍부터 기존 유리병 라인의 일부를 유리밀폐용기 신제품 라인으로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며 “B2C 시장 지배력이 그만큼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아우트로’를 비롯해 ‘셰프토프’(쿡웨어), ‘얌얌’(유아용품) 등 신규 브랜드를 안착시키는 것도 과제다. 삼광유리는 종합 주방용품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 아래 통합 소비재 브랜드 ‘유하스’를 출범시킨 후 아우트로 등 3개 신규 브랜드를 론칭했다.

황 사장은 “작년 처음 선보인 신규 브랜드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시나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성공 노하우가 충분하기 때문에 제2, 제3의 ‘글라스락’으로 성장할 날이 머잖아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