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당내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규 순환출자 금지 외에 기존 출자 해소는 거부한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와 기업 범죄 처벌 강화 등은 현행 법규보다 훨씬 강해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박 당선자의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 상황에 따라 경영 방향을 다소 수정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현대차, 금산분리 공약 등에 ‘긴장’

박 당선자의 공약 중 재계를 가장 긴장시키는 것은 금산분리 강화다.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신규만 금지하고 기존 출자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겠다고 한 만큼 해당 기업들이 안도하고 있다.

박 당선자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축소하고, 대기업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상한을 현행 15%에서 향후 5년간 5%까지 줄인다는 방침이다. 금융계열사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도 공약에 포함시켰다.

기업들은 비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5%로 제한하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금산분리 강화는 그룹 내에서 금융계열사의 덩치가 큰 삼성에 보다 영향을 많이 미칠 전망이다.

박 당선자의 공약에는 모든 금융회사의 대주주 적격성을 정기적으로 심사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은행 외에 보험사까지 일정 주기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게 되면 적지 않은 파장이 올 수 있다. 보험업법에서 대주주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보험사는 최대주주뿐 아니라 6촌 이내 혈족,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까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일부 노동친화적인 공약은 노조 관련 분란이 잦은 현대차에 껄끄럽다. 박 당선자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상향 조정 △근로시간 단축 △정년 60세로 연장 △해고요건 강화 등을 공약했다.


○SK 등 총수 재판 중인 기업 ‘비상’

SK 한화 태광 등 오너가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박 당선자의 기업인 범죄 처벌 강화와 관련된 공약 이행 여부에 민감하다. 박 당선자는 기업인 범죄와 관련해 형량 강화와 집행유예·사면 제한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유용횡령해 선물투자 등에 쓴 혐의로 징역 4년을 구형받고 오는 28일 1심 선고를 앞둔 SK그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항소심도 재계의 관심 대상이다.

선거 직후인 20일엔 14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가 열린다. SK그룹 관계자는 “박 당선자가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장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롯데 등 ‘골목상권’ 관련 기업도 ‘예민’

대형 유통업체들은 다소 안도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박 당선자가 골목상권과 소상인 보호를 위해 내건 공약이 문 후보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유통업체에는 부담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박 당선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점포 신설과 관련, ‘사전입점 예고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점포를 신설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미리 알리고 지역주민은 물론 영세 자영업자들과 협의를 거치되, 점포를 내더라도 골목상권을 지원할 수 있는 보호책을 내놓도록 유도하는 게 골자다. 대형마트 A사 관계자는 “문 후보가 내걸었던 허가제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신규 출점에 상당한 제한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영업규제에 대해서는 유세나 공약에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유통업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현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유통법 개정안은 의무휴업일 지정가능 일수를 월 최대 3일로 하루 늘리고, 영업제한 시간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로 현행보다 네 시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건호/송태형/윤정현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