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3.0’의 핵심은 의사결정 권한의 이양이다.”

최태원 SK 회장(사진)이 그룹 회장으로서의 권한을 내려놓았다. 최 회장은 18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을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에게 넘겨주며 SK식 자율 경영이 본격화됐음을 알렸다. 최 회장이 그룹 대표로서 해온 모든 활동을 신임 김 의장이 하게 되고, 최 회장은 경영 전면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장 내년 1월2일 예정된 SK그룹의 신년교례회에서도 김 의장이 신년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사내에 ‘따로 또 같이 3.0 체제’의 출범을 알리며 “내년부터는 계열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단위에서 결정해 나가게 될 것”이라며 “내가 조금 더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이 기업 가치 극대화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지난달 말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사외이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CEO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따로 또 같이 3.0’의 구체적 실행 방안인 ‘상호 협력방안 실행을 위한 협약서’를 채택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 체제에서 계열사들은 지주회사인 SK㈜와의 협의 대신 소속 위원회와 내부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자적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지주회사의 가장 막강한 권한으로 꼽히는 계열사 CEO와 임원 인사권도 위원회로 넘어간다. CEO 인사 평가는 각 계열사가 속한 인재육성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각사 이사회가 최종 확정하게 된다.

그룹 전반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인물에게 그룹 수장 자리를 넘겨주고 계열사 CEO들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최 회장의 구상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계열사별 소속 위원회와 위원장 인선작업을 끝내고 내달 중순 완성될 새 경영체제 아래에서는 소속 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안건은 계열사별 이사회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위원회는 다른 계열사와도 관련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계열사 이사회 결의를 거친 후 1사1표 원칙으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

이 과정에 지주회사나 회장의 개입 없이 관련 계열사와 위원회 간의 자율적인 소통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자율경영의 핵심이다. 최 회장은 “일하는 방식이 이렇게 바뀌면 CEO의 역할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커진다”며 “CEO가 자기 회사의 경영판단과 의사결정을 스스로 해야 하고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 이사회의 책임과 권한도 따라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서의 의사 결정 등 업무는 다 내려놓지만 SK㈜,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3개사의 대표이사 회장직은 유지한다.

위원장도 계열사별로 소속 위원회가 정해지면 위원들이 위원장을 추천하고 전략위원회가 이를 수렴해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현 부회장단까지로 위원장 후보군을 넓혀놓은 가운데 전략위원회와 인재육성위원회는 지금처럼 각각 김영태 SK㈜ 사장과 정만원 부회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현/정성택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