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래동 하나은행 지점 맞은편 골목에 있는 일성정밀. 50여평의 허름한 임차공장 밖으로 ‘윙’하는 쇠 깎는 소리가 들린다. 머시닝센터와 보링기 등으로 기계부품을 가공하는 종업원 6명의 영세 제조업체다.

작업복 차림으로 기계를 돌리는 이 회사의 유태호 사장(58)은 요즘 걱정이 많다. 영등포초교에서 신도림역으로 가는 경인국도 양쪽의 ‘문래동 금속가공단지’가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결정(도시계획위원회 심의통과)돼 2~3년 뒤 철거가 본격화되면 갈 곳이 없는 탓이다.

서울시가 지난 10월 문래동 1~4가 일대 준공업지역 27만9472㎡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이곳 주민이나 토지소유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수십년 된 낡은 공장지대가 첨단 주거 및 산업시설로 바뀌기 때문이다.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공장)와 임대공장도 들어선다. 기존 공장을 최대한 배려해 사업을 진행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세공장들은 철거가 시작되면 당장 둥지를 틀 곳이 없다. 유 사장은 “남동·반월·시화산업단지 등 수도권 어디를 다녀봐도 30~50평 규모의 작은 공장은 찾기가 힘들다”며 “어디로 이전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런 영세 제조업체가 문래동에는 1355개나 된다. 이 중 86%가 임차공장이다. 일성정밀은 이 지역 업체 중 제법 큰 편에 속한다. 대부분 30평 안팎의 공장에 직원 2명을 두고 일한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철거가 시작되면 작은 공장들은 이전지를 찾지 못해 70~80%는 문을 닫게 될 판”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공사 기간 중 공장을 못 돌리면 거래처가 다 끊겨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금속가공 분야의 ‘실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선반 밀링 보링 도금 광택내기 등의 업종에 종사하면서 기계부품 방위산업용품 자동차부품 철강자재 등을 가공하고 있다. 이들은 말이 ‘사장’이지 작업복 입고 일하는 경력 30~40년의 ‘숙련기능공’이다. 자칫 이들의 소중한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

"재개발 기간에도 일할 임대공장 시급"

서울의 대표적인 영세기업 밀집지역 문래동에는 모두 2828개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 중 제조업이 1355개로 전체의 47.9%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판매업 947개, 서비스 504개, 기타 22개가 잇고 있다.

이 지역 기업인들이 도시환경정비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이전할 마땅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 신도림동의 528개 영세제조업체들도 같은 이유로 비슷한 시기에 이전해야 할 판이다.

문래동에서 20여년간 공장을 하다가 인근 신도림동으로 옮긴 박양동 제일이엔지 사장(58)은 “문래동과 신도림동을 합치면 작은 공장 1800여개가 이전해야 한다”며 “여기에 광명·시흥보금자리 사업마저 시작되면 작은 공장 수천개가 옮겨가면서 공장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소기업이 옮겨갈 수도권 공장지대는 없다. 문래동 입주 제조업체 중 86%가 임차공장이어서 제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다.

곽의택 소공인진흥협회장은 “1800여개 업체가 공사 기간 중 단절 없이 공장을 돌릴 수 있도록 임대공장을 마련하는 등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업 추진은 주민들 몫이지만 공사가 시작돼도 한꺼번에 진행되는 게 아니고 구역별로 순차적으로 이뤄져 업체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