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글씨 쓰듯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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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한문은 상형문자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중국인들은 ‘그림과 글씨의 기원은 같다(書畵同源)’는 철석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글씨를 배우는 가운데 그림 그리는 법도 자연스럽게 터득된다는 생각도 그런 믿음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문자를 터득한 문인계층은 모두가 잠재적인 화가인 셈이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법이 점차 형식화의 길을 걷게 되면서 글씨 쓰는 법과 적지 않은 괴리가 생긴다. 문인들은 이런 현상을 타성에 얽매인 것으로 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청대의 화가 나빙(羅聘, 1733~1799)은 옛 그림이 갖고 있던 이런 글씨의 맛을 되살리려 했다. 나빙의 ‘정경(丁敬)초상’을 보면 얼굴이건 신체 묘사건 간에 마치 초서를 연상케 하는 불규칙한 필선이 특징적이다. 게다가 그림 우측의 ‘정경신선생상’(敬身은 정경의 字)이라는 화제도 상형의 맛이 살아 있는 전서로 썼다. 그 결과 이 초상에는 고상한 문인적 아취와 문자의 향기가 짙게 풍긴다. ‘서화동원’이라는 믿음이 중국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음을 보여주는 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그런데 그림 그리는 법이 점차 형식화의 길을 걷게 되면서 글씨 쓰는 법과 적지 않은 괴리가 생긴다. 문인들은 이런 현상을 타성에 얽매인 것으로 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청대의 화가 나빙(羅聘, 1733~1799)은 옛 그림이 갖고 있던 이런 글씨의 맛을 되살리려 했다. 나빙의 ‘정경(丁敬)초상’을 보면 얼굴이건 신체 묘사건 간에 마치 초서를 연상케 하는 불규칙한 필선이 특징적이다. 게다가 그림 우측의 ‘정경신선생상’(敬身은 정경의 字)이라는 화제도 상형의 맛이 살아 있는 전서로 썼다. 그 결과 이 초상에는 고상한 문인적 아취와 문자의 향기가 짙게 풍긴다. ‘서화동원’이라는 믿음이 중국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음을 보여주는 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