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권산업이 위기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국내 증권사들이 이제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외부 충격에 따른 일시적 '쇼크'에는 강한 내성과 복원력을 자랑했지만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 하락)과 이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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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 증권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불안한 경제 환경과 주식시장 정체 속에서도 살아남은 일본 증권사들에 주목했다.

부동산과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이에 따른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 일본 증권사들이 어떤 생존전략으로 살아 남았는지를 현지 취재를 통해 속속들이 살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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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시내의 아이자와증권 지점. 고객을 면담하기 위해 자리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는 한국 증권사 지점과 달리 빈 테이블만 놓여져 있다. 고객이 자리에 앉아 벨을 누르자 높은 벽 뒤에서 영업 직원이 나온다. 지점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업직원들의 사무 공간과 응대 공간을 분리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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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수수료 자율화 등 '일본판 금융빅뱅'으로 증권사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본 증권사들은 앞다퉈 허리띠를 졸라맸다. 일본증권업협회에 따르면 1990년 3198개에 이르던 증권사 지점 수는 1999년 2294개로 급감했다. 임직원수도 15만8600명에서 9만2000명으로 감소했다.

오이시 아츠시 아이자와증권 기획부장은 "10년전 타 증권사를 흡수합병하면서 지점이 39개로 늘었지만 상권이 겹치거나 수익이 안나는 지점을 폐쇄해 다시 32개로 줄었다"며 "남은 지점들도 큰 응접실을 반 정도로 줄이고 근처 작은 사무실로 옮기는 등 비용 감소를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오카산증권은 해외에 퍼져 있던 자금을 국내로 회수하는데 집중했다. 오카산증권은 은행이 증권을 삼켜버린 일본 증권업계에서 꾸준히 독립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중견 증권사다.

오카산증권은 1990년대 당시 미국, 영국, 파리 등 세계 15곳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었지만 1997년 국내 대형증권사인 야마이치증권이 도산하는 것을 보고 현지 법인을 모두 폐쇄했다. 자본을 국내에 집중시켜 안전하게 경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바시 히로유키 오카산증권그룹 전무는 "사업구조를 재편할 때는 제한된 경영자원을 어느 부문에 넣을 것인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며 "당시 자본을 국내로 회수하고 과대투자를 하지 않았던 전략이 유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주의' 경영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은 없었지만 비경영부문의 간접비용을 줄이기위해 본사 인원을 영업부문으로 배치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주변 비즈니스를 통폐합하는데 힘썼다. 2007년에 국내 주식 거래가 줄어들고 해외 상품 거래가 늘어나는 상황을 반영해 오카산증권과 오카산경제연구소를 합병하고 2008년 '오카산 글로벌 리서치 센터'를 개설했다.

SBI증권은 지난 6월 보유하고 있던 지점 23곳을 그룹에 넘겨버렸다. 온라인증권사인 SBI증권은 본래 별도의 지점이 없었지만 2007년 오프라인증권사를 합병하면서 지점도 인수하게 됐다.

그러나 증권회사의 상품만 파는 지점은 효율이 없다고 판단해 계열사인 SBI머니플라자에 지점을 넘겼다. SBI머니플라자는 자산운용, 보험, 주택론 등 그룹 금융상품의 오프라인 판매를 도맡고 있다.

도쿄(일본)=한경닷컴 정인지·김효진 기자 injee@hankyung.com

협찬 : 금융투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