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경영 판단 행위를 했다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학계에서 나왔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교수(사진)는 14일 한양대 법학관에서 열린 한양법학회 동계학술세미나에서 ‘이사 등의 경영 행위에 대한 배임죄 성립 범위’에 관한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강 교수는 재산 범죄는 피해자의 승낙이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24조 규정을 기업인의 배임 혐의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임죄의 피해자는 주주가 아닌 회사이며 회사의 의사는 이사회의 결의와 같은 것이므로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이뤄진 경영 행위는 피해자의 승낙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강 교수의 견해다.

그는 현행 배임죄가 배임에 따른 구체적인 손해 없이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죄형 법정주의에 반하고 이런 맹점이 배임죄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민사사건을 과도하게 형사사건화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형법 규정의 올바른 해석이라기보다는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정책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타율적이고 과도한 통제와 간섭은 기업의 대외적인 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임죄의 구성 요건과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보장될 때 성장가능성과 대외적 경쟁력을 갖는다며 경제민주화 논란 속에 기업인 배임죄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기업의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지만 경영 행위의 특성과 경영 원칙을 무시하면 안된다”며 “기업인의 경영 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소극적인 기업 경영과 투자 억제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사의 경영 판단 행위가 주주총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라면 피해자의 승낙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회사 소유자의 의사’에 해당하고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체계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 많은 기업인들이 1심에서 잇따라 실형을 받았다. 한 전문가는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적용 논란은 이사회 구성의 투명성과 독립성이 취약하고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