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어느 노숙인의 희망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나 찾아 이 거리 헤매고있어…'
시쓰기로 자신의 존재감 확인
함께하는 가족 소중함 일깨워"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
시쓰기로 자신의 존재감 확인
함께하는 가족 소중함 일깨워"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
한 해가 다 가고 있는 지난 13일 밤, 의정부에 있는 과학도서관 아트홀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홈리스 시화전 시낭송회’가 열린 것이다. 홈리스(homeless), 즉 ‘노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전에는 가족이 있었을지라도 지금은 가족과 헤어져 거리를 자기 집삼아 살아가야 한다. 집이 없는 이들은 지하철 역사에서 특히 많이 자는데 서울역 같은 데 밤에 가보면 그 수가 엄청나 깜짝 놀라게 된다.
부천과 안양, 의정부에 사는 노숙자들이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몇 달간 시 쓰기 공부를 했고, 그 결과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행사를 이날 가졌다. 나는 어쭙잖게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전시된 작품들을 보았다. 한평생 시를 모르고 살았던 완벽한(?) 아마추어 보통사람들의 작품인지라 시라기보다는 일기나 수필을 짧게 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진솔하고 진지하게 쓴 것이어서 마음을 찌르르 울리게 했다. 7시 반부터 시낭송회가 시작됐다. 한 명씩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 앞에서 자작시를 읽는 동안 앞의 대형 화면에는 시가 비쳤고, 잔잔한 음악도 울려퍼졌다.
이들의 70%는 결혼을 해본 적이 없는 노총각들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생긴다는 것/ 그것은 나의 희망이다”라고 쓴 것이리라. 결혼을 한 경우, 가족과 헤어져 살게 된 사연이야 가지각색이었다. 술의 유혹에서 못 빠져나와, 외환위기 때 사업체가 망해, 노사분규 때 전과자가 돼, 늙고 병들어…. 나는 이들이 전부 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다고 여겼는데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다. 오히려 희망의 찬가를 부르며 이 생활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싶어했다. “차근차근 개미처럼 땀 흘려 일해서/ 착실히 돈을 모아 시골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싶다”, “나머지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형 고마워요/ 풀빵은 이제 내 희망이야/ 죽지 않고 다시 한번 살아볼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세탁된 나 자신을 볼 수 있겠지”….
이들의 가장 큰 소원은 결혼을 해보지 않았던 이는 가족을 갖는 것이고, 가족이 있는 이들은 가족과 다시 함께 사는 것이었다. 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이들의 최대 최고의 소원이었다. “나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단 하나 희망인/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만나고 싶은 내가/ 아직도 나를 찾아서/ 이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냥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서 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시구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들은 먼 길을 찾아온 노모에게 푸른 수의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었다. 걱정할까 염려도 돼 면회 사절을 하고 말았다. 아픈 몸으로 찾아왔던 노모는 아들의 얼굴을 못 보고 간 뒤 병이 깊어져 죽고 만다. “그 후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창살 너머 하늘을 보고 펑펑 울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나도 그만 울고 말았다.
정말 난감한 심사였다. 약간이라도 문학성이 있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긴 했지만 삶의 진실성도 간과할 수 없었다. 낭송 점수를 따로 매기게 돼 있었지만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참가자 중 4명에게는 두둑한 상금을 드렸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모두 이번 겨울 따뜻하게 나시라고 두꺼운 점퍼를 선물했다.
이날 밤, 낭송한 이와 모든 청중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비록 노숙자였지만 시장을 비롯한 많은 청중 앞에서 자작시를 읽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곧 연말연시다. 가족이 있다면 서로 덕담을 나눌 시점이다. 가족이 멀리 있다면 만나보고, 만나지 못하면 사랑을 전하자.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에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축복받은 존재다. 이 세상에는 가족이 아예 없거나 헤어져 있어서 서러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올겨울에는 거리에서 주무시는 노숙자가 한 분이라도 덜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
부천과 안양, 의정부에 사는 노숙자들이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몇 달간 시 쓰기 공부를 했고, 그 결과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행사를 이날 가졌다. 나는 어쭙잖게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전시된 작품들을 보았다. 한평생 시를 모르고 살았던 완벽한(?) 아마추어 보통사람들의 작품인지라 시라기보다는 일기나 수필을 짧게 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진솔하고 진지하게 쓴 것이어서 마음을 찌르르 울리게 했다. 7시 반부터 시낭송회가 시작됐다. 한 명씩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 앞에서 자작시를 읽는 동안 앞의 대형 화면에는 시가 비쳤고, 잔잔한 음악도 울려퍼졌다.
이들의 70%는 결혼을 해본 적이 없는 노총각들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생긴다는 것/ 그것은 나의 희망이다”라고 쓴 것이리라. 결혼을 한 경우, 가족과 헤어져 살게 된 사연이야 가지각색이었다. 술의 유혹에서 못 빠져나와, 외환위기 때 사업체가 망해, 노사분규 때 전과자가 돼, 늙고 병들어…. 나는 이들이 전부 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다고 여겼는데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다. 오히려 희망의 찬가를 부르며 이 생활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싶어했다. “차근차근 개미처럼 땀 흘려 일해서/ 착실히 돈을 모아 시골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싶다”, “나머지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형 고마워요/ 풀빵은 이제 내 희망이야/ 죽지 않고 다시 한번 살아볼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세탁된 나 자신을 볼 수 있겠지”….
이들의 가장 큰 소원은 결혼을 해보지 않았던 이는 가족을 갖는 것이고, 가족이 있는 이들은 가족과 다시 함께 사는 것이었다. 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이들의 최대 최고의 소원이었다. “나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단 하나 희망인/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만나고 싶은 내가/ 아직도 나를 찾아서/ 이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냥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서 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시구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들은 먼 길을 찾아온 노모에게 푸른 수의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었다. 걱정할까 염려도 돼 면회 사절을 하고 말았다. 아픈 몸으로 찾아왔던 노모는 아들의 얼굴을 못 보고 간 뒤 병이 깊어져 죽고 만다. “그 후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창살 너머 하늘을 보고 펑펑 울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나도 그만 울고 말았다.
정말 난감한 심사였다. 약간이라도 문학성이 있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긴 했지만 삶의 진실성도 간과할 수 없었다. 낭송 점수를 따로 매기게 돼 있었지만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참가자 중 4명에게는 두둑한 상금을 드렸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모두 이번 겨울 따뜻하게 나시라고 두꺼운 점퍼를 선물했다.
이날 밤, 낭송한 이와 모든 청중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비록 노숙자였지만 시장을 비롯한 많은 청중 앞에서 자작시를 읽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곧 연말연시다. 가족이 있다면 서로 덕담을 나눌 시점이다. 가족이 멀리 있다면 만나보고, 만나지 못하면 사랑을 전하자.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에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축복받은 존재다. 이 세상에는 가족이 아예 없거나 헤어져 있어서 서러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올겨울에는 거리에서 주무시는 노숙자가 한 분이라도 덜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