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있는 전자 부품 제조업체 A사.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온 이 회사의 B사장은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는 요즘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졌다. 3년간 LED 조명 신기술 연구·개발(R&D)과 전문가 영입에 수억원을 쏟아부었는데 내년부터는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B사장은 “신사업이 자리를 잡은 덕분에 회사 전체 매출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내년에는 중소기업 지위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소기업 혜택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으면서도 신사업을 키울 수 있는 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천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C사의 D사장. 그는 최근의 원화 강세(환율 하락)가 싫지만은 않다.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면 매출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그럼으로써 중소기업 지위를 1년 더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는 “기업 체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상장사도 아니기 때문에 실적이 약간 주춤하는 건 감내할 수 있다”며 “중견기업이 돼 당장 각종 지원이 끊기는 게 더 무섭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전 산업군으로 확산되고 있다. 데스크톱PC 같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 잇단 중소기업 보호 정책도 이런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중소기업기본법을 보면 자기자본이 1000억원 이상이거나 지난 3년 평균 매출이 1500억원 이상인 기업은 자동으로 중소기업 지위를 잃게 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이럴 경우 세액공제, 세액감면, 정책자금, 인력공급, 판로확보 등 다방면에서 160여종의 혜택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중기청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투자금액의 3%를 소득세나 법인세에서 공제받을 수 있고 R&D 및 인력에 투자하면 개발비 원가의 일부를 법인세에서 공제받는 것도 가능하다”며 “중견기업이 되면 이런 혜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소규모 신설 법인을 설립하는 ‘기업 쪼개기’에 나서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는 배경이다. 경기도에서 가구 관련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D사장은 “중견기업이 되면 혜택은 급감하고 규제는 급증한다”며 “중소기업으로 계속 남기 위해 회사를 분할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산업의 허리인 중견기업을 제대로 육성하려면 중소기업과는 차별화된 중견기업 전용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에 있는 주물업체 E사도 몸집을 늘리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외국인 근로자를 지속적으로 채용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 회사 고위 임원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모두가 피하는 ‘3D’ 업종은 한국인 근로자들이 아무도 일하려고 하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를 쓰지 않고는 하루도 제대로 공장을 돌릴 수 없다”며 “중소기업 지위를 벗어나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어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 중소기업 적합업종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업영역 보호를 위해 중소기업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종을 지정하는 제도. 지난해부터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조업에서 총 82개 품목을 지정해 해당 업종에 대한 대기업의 사업 제한 및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10개 이상이고 공공기관의 연간 구매실적이 10억원 이상인 제품에 대해 3년간 공공시장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하는 제도. 중기청은 매년 기존 제품 연장 및 신규 제품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