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들이 나신을 드러내더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추운 겨울이 오면 세한(歲寒)이란 말과 함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오른다. 네 그루 솔과 집 한 채가 전부인, 단출한 풍경이 주는 감동은 수많은 말보다 울림이 크다. 추사의 문집에도 그의 글씨, 그림처럼 고졸한 멋을 풍기는 글들이 실려 있다. 여기 소개하는 두 편의 편지는 그야말로 글로 쓴 세한도라 함직하다.

‘강가라서 유달리 추운데다 동짓달이라 추위가 닥쳐와 입이 덜덜 떨립니다. 요즘 추운 날씨에 벼슬살이에서 평안하심을 살펴 알았으니, 송축합니다. 다만 지난날 외진 산골에서 쓸쓸히 사실 때나 현재 요직에 올라 현달한 때나, 만난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실 뿐이겠지요. 나 같은 사람은 외진 강가에 틀어박힌 채 마음대로 찾아가 만나지도 못하고 있으니, 물고기와 새에게 비웃음을 받기에 알맞고, 또한 이내 삶이란 것이 깊은 산 속 노승의 찰나만도 못합니다. 우스운 노릇입니다.’(《완당집》중 ‘이석농-종우-에게 주다(與石農鍾愚)’)

‘추위의 여세가 곧장 세밑까지 이어진 데다 썰렁한 강 기운마저 엄습하니, 동파(東坡)의 지옥(紙屋)과 죽탑(竹榻)으로는 월동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당 태위가 고주(羔酒)를 조금씩 따라 마셨던 풍류도 내게는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추운 아침에 손을 호호 불고 이 가절에 무료함을 더욱 느끼면서, 그저 산중에서 눈 녹인 물에 차를 우려 마시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던 차에 뜻밖에 보내주신 편지와 함께 좋은 술과 산짐승 고기를 받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 구미에 너무 호사스러울 뿐 아니라 식욕도 가라앉았으니, 저 연한 양고기에 은합(銀)의 술을 마신 모산(茅山)의 도사(道士)들은 식탐이 많은 배불뚝이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권이재-돈인-에게 주다(與權齋敦仁)’)

첫 번째 편지는 추사가 석농 이종우(1801~?)에게 보낸 것이다. 추사는 1849년, 64세의 노령으로 9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나 한강가 용산의 집에서 살았다. 여기서 강은 바로 한강을 가리킨다. 석농은 산수화를 잘 그렸고, 글씨는 신위와 추사의 필법이 조화된 독특한 서체로 필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가뜩이나 추운 동짓달, 추사는 차가운 강바람이 냉기를 몰아오는 한강가의 집에서 입을 덜덜 떨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 긴 유배에서 풀렸지만 아직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처지라 자유로이 나다니는 물고기와 새가 부럽다. 그래서 자기의 삶이란 것이 아무 일없이 한가로운 저 산속 노승의 찰나만도 못하다고 투덜거린다. 그렇지만 이 편지에서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 따위는 읽을 수 없고, 오히려 추운 겨울 한 그루 낙락장송 같은 굳고 곧은 기품이 느껴진다.

두 번째 편지는 추사가 이재 권돈인(1783~1859)에게 보낸 것이다. 이재는 서화에 뛰어났고, 추사와 특히 친밀했다. 중국 송나라 때 한림학사 도곡이 당 태위 집의 기녀를 얻어서 돌아오는 길에 눈 녹인 물로 차를 우려 마시면서 “당 태위 집에서는 이러한 풍류를 몰랐겠지”라고 하자, 그 기생이 대답하기를 “그는 거친 사람이니, 어찌 이런 풍류가 있겠습니까. 다만 따뜻한 소금장(銷金帳) 안에서 잔에 얕게 술을 따라 마시고 가기(歌妓)의 나직한 노래를 들으며 양고주(羊羔酒)를 마실 줄 알 뿐입니다”고 하니, 도곡이 부끄러워했다는 고사가 있다. 소금장은 금색 실을 넣어서 정교하게 짠 고급 휘장이다. 양고주는 이름난 미주(美酒)다. 원나라 송백인의 《주소사(酒小史)》에 “산서(山西)에는 양고주이다”고 했다.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했다. 곤궁해도 지조를 잃지 않는 선비의 삶을 비유하는 세한이란 말이 여기서 생겼다. 세상은 대선정국으로 시끄럽고, 겨울은 점점 더 추워만 간다. 저 푸르고 굳은 솔을 보면서 세한도를 떠올리고 세한에 세한도의 삶을 살았던 추사를 생각하면서,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올겨울을 맞는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