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선후보 TV토론의 가장 큰 성과는 아마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와 그 정당의 종북 실태가 ‘빙산의 일각이나마’ 전 국민에게 공개된 것일 게다. 이날 가장 규명됐어야 할 문제는 노무현-김정일 ‘북방한계선(NLL) 대화록’에 대한 민주통합당 후보의 태도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를 공개할 의향이 없는지 물었으나 문재인 후보는 이에 답변하지 않았다.

NLL의 실상은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사항이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강행할 당시 유엔군은 압록강 이하 서해의 모든 섬과 해안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휴전이 급했던 미국은 우선 육상의 휴전선만 양측 전선을 경계로 확정하고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그 한 달 후 미군은 서해 백령도 이남 5도를 제외한 모든 북쪽 해역과 섬을 일방적으로 북에 돌려주고 우리 해군이 북진을 못하도록 지금의 ‘북방 한계선’을 그었다. 남한에는 글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강제된 작전 금지선이며 북으로서는 넝쿨째 굴러온 복이었다.

이후 북이 20년간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NLL은 국제법상 효력을 인정받는 남·북 영토의 경계선이 됐다. 그러다가 다시 “유엔군이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 무효”라며 끊임없이 도발해온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정원에 보관 중인 10·4 공동선언 전날의 노-김 단독회담 대화록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전제하에 남북공동어로구역을 제안하고, 김정일은 ‘NLL 관련법을 폐기하시오’라고 답한 발언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가 자진해서 국경선을 포기하려 한 전대미문의 이적행위가 된다.

북한은 현재 휴전 중인 대한민국의 엄연한 주적이다. 10·4 공동선언 이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자행했다. 이런 북한에 NLL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담보해서 북 정권을 지켜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안존의 울타리가 걸린 문제 앞에서 여야의 고만고만한 일자리나 복지 공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NLL 대화의 실상과 그 주동세력으로부터 현 야당 후보가 얼마나 자유로운 인물인지 국민이 무조건 알아야 할 것은 사실 따질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남한의 좌파들은 왜 이토록 세계의 양심이 지탄하는 북 정권을 지켜주는 데 집착하는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좌파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집단은 북한의 독재나 인권참상을 지적하면 외면과 부정(否定)을 넘어 거의 적대적이 된다. 그 근본적 이유는 이들의 머릿속을 뒤져봐야 알 일이다.

오늘날 야당의 지도세력들은 1980년대 반독재투쟁을 지휘하던 전대협·한총련 등의 의장이나 간부를 지낸 486집단들이다. 이들은 레닌의 엘리트 지배이념과 김일성 주체사상은 물론 그 행동까지 철저히 답습한 세대다. 이들이 대회장에 입장할 때는 공산국가 지도자처럼 호위대가 도열하고 군중이 기립해 환호하고 경례했다. 이 지도자들의 지령에 따라 대학생 행동부대가 최루탄 맞고 부상당하고 끌려가는 동안 이들은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이들의 이념 의식 정서 태도 모두가 북쪽 지배자와 일치하지 않는가 의심되는 것이다.

원래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는 개인의 자유, 능력, 책임과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보상한다. 반면 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은 이런 개인의 가치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지도자나 집단의 목적 수행에 도구가 될 것을 강요한다. 486집단은 자유 시장경제 같은 개인주의 경쟁체제에서는 출세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보다 큰 정부와 집산체제를 조직해 거기서 기업과 인간을 이리저리 배치하고 지령하는 역할을 하길 원한다. 이는 바로 북 체제의 아류(亞流)다.

따라서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정체의 대한민국을 원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 사회의 부자 기업 보수주의자들을 기득권으로 몰고, 한·미군사동맹 제주해군기지 국가보안법 등 안보의 초석을 극력 저지하려 하고, 이 나라 건국을 도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소고기 수입 등 모든 관계 단절을 도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가.

이 좌파집단과 애국가를 안 부르는 이정희 후보는 4월 총선 때 연대한 부류다. 실로 이번 대선에 어떤 운명을 걸고 투표하는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