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성형외과 의사들, 왜 파파라치 수업을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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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리포트
"현금 내겠다"며 탈세 유도한 뒤 신고하는 稅파라치 습격에 연합전선
환자로 가장한 5~6개팀…몰카 동원해 신고자료 촬영…'차명계좌 입금' 수법 많아
1년 새 100여곳 조사당해…병원들 방어책 찾기 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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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100여곳 조사당해…병원들 방어책 찾기 골몰
지난 6일 저녁 성형외과가 밀집된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근처 S면옥. 오후 7시가 넘어서자 인근 성형외과 원장 10여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예정된 모임 멤버에서 한 명의 불참자도 없었다. 송년 모임이라지만 출신 대학도, 나이도 서로 다르고 평소 왕래도 뜸했던 이들이 바쁜 연말에 한자리에 모인 건 공통의 고민 때문이었다.
이들 외에 ‘특별 손님’이 초대된 것도 이 때문이다. 탈세를 신고하고 세무당국으로부터 포상금을 받아내는 ‘세파라치’가 강남 일대 성형외과를 노리고 공격하자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세무사와 파파라치 학원 강사를 각각 초빙해 ‘강의’를 듣는 자리였다. 이날 모임은 세무사와 파파라치 학원 대표가 강의를 진행하고, 참석한 의사들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마무리됐다.
W 파파라치 학원 김모 대표는 “세파라치들은 (탈세 증명을 위해) 손목시계나 볼펜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소지하고 있다”며 “몰래카메라 탐지기를 구비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한국의 성형메카인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 병원들의 탈세현장을 신고해 한몫 챙기려는 세파라치와 이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는 병원들 간 치열한 생존경쟁이 한창이다. 세파라치들이 전국을 순례하듯 각 지역 병원 밀집지역을 돌며 환자로 위장, “현금을 낼테니 수술비를 깎아달라”며 현금 거래를 유도하고 탈세 현장을 몰래카메라 등으로 찍어 국세청에 신고하는 건수가 한 달 수십건에 달한다. 세파라치들은 지난 7월에 서울과 분당, 수원 등 수도권 일대, 지난 9월과 10월에는 부산과 울산 등 남부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뒤 다시 서울로 ‘회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파라치제도는 2010년 4월 병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병원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세파라치 양성 학원 대표나 세무사 등 전문가를 초빙해 ‘비밀과외’를 받는 소모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강남 성형외과 타깃…1년 새 100곳 세무조사
국세청은 병원들이 사업용 계좌를 사용하지 않고, 차명 계좌를 사용하면 소득 신고를 누락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병원도 입금 흔적이 뚜렷이 남아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세무 당국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조사를 받은 성형외과가 강남 일대에서 100곳이 넘는다.
대한성형외과 의사회에 자문을 하는 허태현 세무사는 “환자를 가장해 현금영수증 미발행을 유도하면 이에 당하지 않을 성형외과가 거의 없다”며 “세파라치의 공격을 당한 성형외과 원장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문의전화가 한 달에 40~50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해 국세청에 신고된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1403건에 불과하던 신고건수는 지난해 1864건으로 32% 늘었다. 올해도 지난 10월까지 1670건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업계에서는 현금 거래가 많은 성형외과나 치과들이 탈세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점을 노려 세파라치 전문 양성학원에서 이들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금영수증 의무제를 위반한 사업자를 신고할 경우 신고자는 현금영수증 미발행액의 20%를 포상금으로 가져갈 수 있다.
강남세무서 조사과 관계자는 “동일인이 여러 성형외과를 돌아다니면서 병원들이 차명 계좌로 돈을 입금받아 세금을 탈루했다고 신고하는 사례가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늘었다”며 “한 달에 수십건씩 세파라치들의 신고가 접수된다”고 말했다.
○세파라치 초빙, 방어책 마련하는 병원들
‘창’이 있으면 ‘방패’도 있는 법. 세파라치들의 기승에 병원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세무전문가는 물론 자신들을 공격하거나 공격 노하우를 전수하던 파파라치 학원 대표와 현직 세파라치까지 초빙, 환자를 가장한 세파라치의 다양한 공격을 막을 기술(?)을 배우는 소모임을 갖고 있다.
이른 모임엔 병원장도 참석하지만 주로 병원 사무장들이 모인다. 진료시간이 끝난 뒤 병원으로 초빙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심 오피스텔에 마련된 강의실에서 4시간이나 8시간 집중 강의를 듣는 방식이다. 강의료는 40만~50만원이다. 교재를 만들어 강의 참석자에게만 5만원에 판매하는 곳도 있다.
강남의 한 파파라치 학원 대표는 “남의 이목을 의식해 영업시간 이후 자신의 병원으로 학원 관계자를 따로 불러 수업을 받기도 한다”며 “세파라치들이 몰카를 찍는 다는 사실에 100만원대인 몰래카메라 탐지기를 설치하는 성형외과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알려진 서울시내 파파라치 학원은 6곳. 하지만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1 대 1 맞춤 교육’을 하는 개인 교습 강사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세파라치의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과 동시에 병원과 학원 등을 대상으로 세파라치의 공격을 막는 법도 가르치고 있다.
○세파라치 신고 한 달 수십건…세무서 비상
세파라치의 활동이 급증하면서 가장 바빠진 곳은 강남·서초·역삼 등 성형외과가 많은 강남 일대 세무서 조사과. 한 달 내내 세파라치의 신고 접수 업무만 처리하는 팀도 있을 정도다. 세무서 조사과 관계자들은 성형외과에서 정상 계좌가 아닌 차명계좌를 사용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병원을 방문, 조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계좌의 몇 년치 거래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강남세무서 조사과 관계자는 “신고한 사람에게 조사 결과를 통보해줘야 하는데 차명계좌의 현금 입출금 내역을 일일이 다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며 “가뜩이나 정규 업무가 많은데 신고 한 건이 들어오면 조사관 한 명이 며칠씩 이를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이만저만 머리 아픈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강남 세무서에 접수되는 세파라치들의 신고 건수는 한 달에 수십건으로 알려졌다.
서초세무서 관계자는 “세파라치들이 일부러 차명계좌 사용을 유도하는 등 무리한 신고가 대부분”이라며 “실제 포상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우섭/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