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300여명의 임종을 지켜보며《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낸 의사 야마자키 후미오는 “나는 절대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고 했다. 인공호흡기를 쓰고 주사액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종말을 맞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에게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데니스 매컬러프 미국 다트머스의대 교수는 회복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인위적 치료를 강행하기보다 편하게 생을 마감하도록 돕자는 ‘슬로 메디슨(slow medicine)’을 주장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고통만 연장할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설립한 실버타운 ‘켄달’에선 입주예정자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진통제를 투여할지 여부를 묻는다. 쇠약한 몸에 독한 약물을 넣어가며 힘겹게 연명할지, 아니면 존엄한 죽음을 맞을지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받다 아무 준비 없이 죽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연구팀이 2008년 암환자 298명을 추적조사했더니 죽기 반년 전까지 적극적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가 95%에 달했다. 미국(33%)의 세 배 수준이다. 웰 다잉(well dying) 순위가 선진 40개국 중에서 33위에 머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6개월간 죽음 준비 과정을 담은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가 국내 개봉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40년 동안 월급쟁이로 일하다 은퇴한 69세 스나다 도모아키 씨. 노후를 마음껏 즐기려던 차에 위암 4기 진단을 받는다. 큰 충격이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과제로 삼는다. 평생 거리를 뒀던 신(神) 믿어보기, 손녀들 머슴 노릇 해주기,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

평소 가족의 일상을 찍어온 영화감독 막내딸(스나다 마미)이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나다 씨는 “장례식 중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물어보라”고 농을 건넬 정도로 씩씩하다. “69년이나 행복하게 살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긍정적 생각의 결과다. 마지막 순간 아내와 자식, 손녀들에게 둘러싸인 스나다 씨는 “이렇게 다들 모이니 여기가 천국”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일부러 감정을 쥐어짜지 않는데도 객석 곳곳에선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2개관으로 개봉해 20여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중·장년층 사이에선 ‘엔딩 노트’ 쓰기 바람까지 불었다. 죽음은 벌이 아니라 긴 여행 끝 귀향이라 했다. 대부분 무방비로 죽음을 맞으면서, 빠른 속도로 고령화돼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