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장, 경기장 등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가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깔끔하게 청소돼 있어 악취가 거의 나지 않는데다 갤러리나 카페처럼 인테리어가 훌륭한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크게 바뀌지 않은 풍경이 있다. 바로 여자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다.

여자화장실 줄이 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화장실 이용 시간이 남자들보다 길다. 여자는 평균 2~3분으로 1분~1분30초가 걸리는 남자의 거의 두 배라고 한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것 외에도 화장이나 옷매무새 머리 등을 만지는 게 보통이다. 더구나 아이들까지 함께 데리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으니 이래저래 여자들이 더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긴 줄의 이유는 이용시간만이 아니다. 남자화장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여자화장실 변기 숫자다. 서울 시내 공중화장실의 남성 대·소변기 수는 10만9000여개로 6만7000여개인 여성용보다 훨씬 많다. 전국 현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장실 변기 수에서 이처럼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건 관련 법규가 그렇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시행되던 ‘오수 분뇨 및 축산폐수의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공중화장실의 남녀 변기 비율을 6 대 4로 정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지 않아 공중화장실 이용객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한 데 따른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랜 시간 화장실에 머무는 데도 변기 수에서는 오히려 역차별을 당했던 셈이다.

화장실 남녀평등 운동이 시작된 건 1996년이다. 여성용 변기가 태부족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그해 관련법이 개정돼 남녀 변기 비율이 1 대 1로 됐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여성용을 더 많이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2004년부터다. 당시 제정돼 현재까지 시행 중인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은 공중화장실 여성 변기 숫자가 남성용보다 많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고속도로 휴게소 내 여성 화장실 변기 수를 남성용의 1.5배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는 수용인원이 1000명 이상인 시설에만 1.5배 이상 비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고속도로 휴게소도 여기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기존 화장실의 남성용 변기 비율이 워낙 높아 신설 화장실에서는 여성용 변기를 훨씬 많이 설치해야 성비균형이 이뤄진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여성용 변기가 늘어난다는 건 남자들에게도 그리 나쁜 소식만은 아닌 것 같다. 화장실 앞에서 여자친구 가방을 들고 서성이는 멋쩍은 풍경도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