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비가 저렴하고 공간도 덜 차지하는데 수처리 기술은 기존 멤브레인 필터 여과시설만큼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서 동남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바이어들이 제품을 보러 수시로 회사를 찾아옵니다.”

수처리 시설 제조업체 (주)생의 정인모 사장(57)은 1주일에 두 차례씩 외국 바이어를 맞이하는 데 정신이 없다. 지난 9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 물 회의’에서 세계 최초로 섬유질 여과 방식을 적용한 대규모 수처리 시설 ‘오아시스 12000’을 선보인 뒤부터 나타난 일이다. 당시 전시회 내내 (주)생 홍보관엔 수백명의 바이어가 찾아와 100건 이상의 상담이 이뤄졌다고 한다.

올해 8월 개발한 오아시스 12000은 가로 13.5m, 세로 2.4m, 높이 2.9m인 45피트 크기의 컨테이너에 유연성 섬유사(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실)를 기반으로 한 공극제어형 섬유여과기를 넣은 정수시설이다.

이 정수시설은 유연성 섬유사 다발을 순간적으로 압착시켜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을 작게 해 불순물을 여과한다. 정 사장은 “이 시설 한 대로 하루 최대 1만2000t의 강물을 정수해 인구 10만명 규모의 도시에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수시설 사용면적은 33㎡로 기존 정수장이 같은 양의 물을 정수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면적인 3966㎡의 120분의 1 규모라는 게 정 사장의 설명이다. 정수시간 역시 대형 정수장이 300분 동안 불순물 응집, 숙성, 침전(가라앉히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달리 오아시스 12000은 필터 방식이기 때문에 같은 양의 물을 10분 만에 정수할 수 있다. 특히 건설비용과 운전비가 기존 재래식 정수시설의 3분의 1 수준이며 시설을 옮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치르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마친 두산중공업과 협력해 지난해 말 냉각기 공정수 처리에 쓰이는 여과 시설에 이 회사 섬유여과기를 투입해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원천기술에 대한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이 높다. 지난 9월 싱가포르 수자원공사(PUB)로부터 실제 정수장에 적용해 운용하기 위한 파일럿 테스트(시험용 생산품) 주문을 받았다.

이 회사는 1999년 11월 설립 후 13년간 섬유여과기 등 수처리 기술개발에 주력해 왔다. 2001년 섬유사 여과장치를 처음 개발한 뒤 105건의 관련 국내외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국내 1500대, 해외 125대의 섬유여과기를 설치했다. 지난해 매출은 145억원. 올해는 45만t 규모의 부산 장림하수처리장 및 양산 하수처리장(60만t)에 이어 지난 6월 인천시 굴포천에 90만t 규모 중력식 하수처리장 설비를 수주하는 등 국내 노후 정수장 시설보완 사업 및 4대강 수질개선 사업 참여 등으로 2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 사장은 올해 세계 물 대회 개최를 계기로 내년엔 약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올해 해외 수주량은 25억원 정도로 전체 10%에 불과했지만 5년 후 세계적인 수처리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수출 비중을 내년 30%, 2014년엔 40%까지 늘리는 등 해외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 공극제어형 섬유여과기

미세 유연사(폴리프로필렌 실) 다발로 둘러싸인 관에 오염된 물을 통과시켜 각종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여과장치다. 관에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어 공극제어형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