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테세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TV토론에서 대선 후보의 눈 깜빡이는 횟수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이색 주장을 폈다. 1980년 이후 대선 토론회를 분석한 결과 2000년 조지 W 부시를 제외하곤 모두 눈을 덜 깜빡인 후보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2008년 매케인과 오바마가 맞붙은 TV토론이다. 1분당 매케인은 104차례, 오바마는 62차례 깜빡였다. 결과는 오바마의 승리였다. 눈을 덜 깜빡여야 자신감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란다.

TV토론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전문가 도움을 받아 콘티를 짜고 리허설을 하지만 자칫하면 실수가 나온다. 한순간 실수가 승패와 직결될 수 있다는 뜻에서 ‘와일드 카드’로도 불린다. 1992년 빌 클린턴과 맞붙은 조지 H 부시는 방청객이 질문할 때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이로 인해 민생 현안에 관심이 없다는 이미지가 고착됐다. 패트릭 스튜어트 아칸소대 정치학 교수는 ‘치아를 다 드러내고 웃는 자연 미소’를 당선 조건의 하나로 제시한다. 자연스러운 미소가 믿음직한 지도자상을 보여주는 효과적 수단이라는 얘기다. 그는 올해 미 대선에서도 롬니는 종종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데 반해 오바마는 활짝 웃어 호감을 줬다고 주장한다.

매끈하게 질문하고 대답한다고 해서 꼭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1984년 먼데일은 토론 때마다 달변으로 화려한 공약을 쏟아내며 레이건을 몰아붙였다. 반면 레이건은 자신의 공약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고도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나중에 유권자들에게 물어보니 투표장에서 레이건의 공약은 떠올랐지만 먼데일은 너무 많은 말을 하는 바람에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감세, 자유로운 기업활동 같은 특유의 공약을 우직하게 밀고 나간 게 지지자들을 끌어들인 효과도 있었을 게다. 후에 레이건은 “주변에서 이것도 알아야 하고 저것도 기억해야 한다며 내 머릿속을 자질구레한 사실이나 기술적 문제들로 가득 채웠다”면서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답변이 더 설득력 있을 때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18대 대선 첫 TV토론회가 오늘 열린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함께 공격할 것으로 보여 구도상으론 박 후보가 불리하다. 하지만 박 후보가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종북문제를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는 등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권자는 사실을 알고 싶어하고, 후보는 그것을 알릴 의무가 있다. 인신공격보다는 공약과 소신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토론회가 됐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