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 상장기업 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은 작년 740개사에서 올해 735개사로 줄었고, 코스닥기업은 더 심해 같은 기간 1031곳에서 1004곳으로 급감한 상태다. 유망기업들이 기업공개 계획을 철회하거나 아예 상장을 기피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은행 대출 대신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규모도 격감하는 추세다. 자본시장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기어이 터져 나올 문제였다. 주가가 떨어져 상장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마어마한 기업 규제 탓에 상장 메리트보다 상장에 따른 경영 부담이 훨씬 더 큰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기업의 기밀까지 공개해야 하는 경영공시 강화, 주가를 관리해야 하는 주식전담인력 도입 같은 부담은 얘깃거리도 안 된다. 대주주 입김을 막아 경영을 감시해야 한다며 경영에 문외한인 외부인사를 의무적으로 감사와 준법감시인으로 두도록 한 것도 모자라 이사회까지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라고 하는 판이다. 게다가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경영인의 의사결정에 대해 사후적으로 규제하겠다며 징벌적 손해보상제 도입 등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주식회사의 본질인 의제자본의 특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대주주의 지분 1%는 소액주주의 1%와 똑같이 1%의 의결권만 가져야 한다는 식이라면 증권시장을 선택할 대주주가 없다. 대주주가 기업을 공개하려면 기업을 뺏길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금융당국이나 거래소는 중소기업 전용증시(코넥스)나 신시장 같은 별도의 증권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지 오래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모두 헛일이다. 우량기업 대주주들이 기업을 키워 상장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자본시장이 왜 죽어가는지를 진정 대한민국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