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제트 비행기로 전 세계를 누비며 수천억원, 수조원의 기업을 사고파는 사람들. 뉴욕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카리브해의 호화 요트로 휴가를 즐기고, 화려한 파티에서 정·재계 고위 인사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 최근 20~30년 사이에 자본주의의 총아로 떠오른 사모펀드(PEF)의 경영진(파트너)들 얘기다.

《사모펀드의 제왕》은 1987년 설립돼 세계 최대 PEF로 자리잡은 블랙스톤과 이를 이끈 스티브 슈워츠먼 회장(사진)의 성장 스토리다. 블랙스톤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기업은 51곳에 달한다. 연간 매출은 1710억달러(약 186조원), 소속 임직원은 50여만명으로 글로벌 5대 기업에 맞먹는다. 이 책은 거대 PEF들이 활약하던 1980년대 중반 후발 주자로 뒤늦게 출발한 블랙스톤이 세계 최대 PEF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겪은 몰락과 부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투자는 타이밍’이라는 기본 원칙을 강조한다. 블랙스톤은 2007년 6월 미국 부동산 버블의 마지막 정점에 기업공개(IPO)에 나서면서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져나오기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앞서 미국 최대 부동산투자회사인 에쿼티오피스를 인수하고 소유 건물을 대거 매각해 현금화했는데, 이 역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기 직전이었다.

블랙스톤의 성공에는 차별화된 투자방식과 위기관리도 한몫했다. 차입매수(LBO·피투자기업 자산이나 미래 수익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인수하는 기법)의 광풍이 불면서 PEF들이 인수가격 대비 5~10% 안팎의 자금만으로 앞다퉈 기업을 사들이던 시기였지만, 블랙스톤은 40% 이상의 인수 자금을 고집했다. LBO를 맹신해선 안 된다는 슈워츠먼 회장의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PEF들이 인수기업에 군림하며 다양한 통제를 가하는 동안 블랙스톤은 경영진과의 교감으로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지금은 일반화된 풋옵션(매입했던 주식을 특정 가격에 해당 기업에 되팔 수 있는 권리)도 당시 블랙스톤이 주도했다.

경제 상황에 따라 인수·합병(M&A) 자문 구조조정 부동산 헤지펀드 등 전통 PEF의 영역을 벗어난 변신도 시도했다. PEF업계에서 ‘소심하다’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다양한 위험회피(헤지)는 지금의 블랙스톤을 만든 주춧돌이 됐다.

이 책은 PEF의 영역을 다뤄 인기를 끈 대표적인 책 《문앞의 야만인들》이나 《KKR스토리》와 다른 듯 닮았다. KKR의 RJR나비스코 인수 일화를 다룬 《문앞의 야만인들》이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에 가깝고 《KKR스토리》는 이 PEF의 성공사례를 집중적으로 해부한 ‘보고서’에 가깝다면 《사모펀드의 제왕》은 블랙스톤의 성장 과정과 함께 PEF 업계의 이면과 미국 금융계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서’라 할 수 있다. M&A업계 전문가들이 번역을 맡아 경제 관련 용어나 딜 구조 등의 설명이 매끄럽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