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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실패로 끝난 10년 은행 대형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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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주택은행을 합친 통합 국민은행이 출범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다. 한빛은행이 우리금융지주로 편입돼 우리은행이 되고,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흡수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조흥은행을 합병한 신한은행과 더불어 4대 은행 체제를 구축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무엇이 어떻게 나아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역대 정권마다 금융허브, 동북아 금융중심지 등 구호만 요란했을 뿐이다. 오히려 은행에 대한 불신만 잔뜩 커졌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당국이 줄곧 추진해온 은행 구조조정 원칙은 금융공급자를 줄이고 은행을 대형화하는 것이었다. 관료들은 세계 50위권 리딩뱅크나 메가뱅크를 노래부르고 다녔다. 그래야 은행 경쟁력을 높여 ‘금융의 삼성전자’가 출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2002년 이전 16개이던 시중은행은 지금 고작 7개로 줄었다. 그나마 두 곳은 외국계다.

    하지만 4대 은행 체제로 만든 구조조정이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총체적 실패라는 지적이 많다. 비좁은 국내 시장에서 땅 따먹기식 이전투구를 벌이다보니 툭하면 여·수신 전쟁이다. 전략도 상품도 마케팅도 한결같이 붕어빵이다. 최근 연이어 터진 CD금리 담합 의혹, 대출서류 위조, 대출 학력 차별 등이 모두 4대 은행에서 벌어진 일이다. 뭔지도 모르고 판 키코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금융기관도 금융회사도 아닌 돈벌이꾼으로서의 생얼을 드러낸 꼴이다. 더구나 1000조원 가계부채 폭증을 주도한 것도 4대 은행이다.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이 10년 새 105% 늘어나는 동안 4대 은행은 178% 급증했다. 정부가 만들어준 독과점 틀 속에서 개인과 중소기업의 담보를 잡고 손 쉬운 이자 장사에 몰두한 결과다. 다락 같은 수수료와 예대마진은 은행이 걷는 면허세다. 그러니 해외로 나갈 이유도 못 느끼고, 나가봤자 판판이 깨지는 게 한국의 리딩뱅크들이다.

    4대 은행의 현주소는 구조조정의 원칙 자체가 틀렸음을 보여준다. 틀렸으면 고쳐야 마땅하다. 덩치만 키워놓고 주인은 인정하지 않는 정책이 병폐의 뿌리다. 정부와 정치권은 은행의 특권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담합과 관치를 온존시키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것에 맛을 들였을 뿐이다. 은행장 위의 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정권 전리품으로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캠프마다 주인 없는 은행도 모자라 대기업 계열 2금융권까지 주인을 없애려는 공약이 난무한다. 소위 금산분리, 주식처분명령제 등을 통해 재벌이 보험 증권사에서 손 떼게 하겠다는 수준이다. 그렇게 금융의 주인을 다 없애고 나면 누가 좋아질지는 뻔하다. 이런 억지가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횡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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