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만에…부자들 '30년물 국채 사랑' 시들
“오늘은 문의 전화가 전혀 없네요.” 30년 만기 국고채의 세 번째 판매일(매출일)을 하루 앞둔 5일. 우리투자증권 압구정 웰스매니지먼트센터(WMC)에는 관련 문의 전화가 한 통도 걸려오지 않았다. 한 프라이빗뱅커(PB)는 “PB한명당 많게는 3~5건씩 받던 예약매수 요청도 끊겼다”고 말했다.

거액자산가들의 국고채 30년물 ‘사랑’이 빠르게 식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자본차익 기대가 예상 밖의 손실로 이어진 탓이다. 일본식 저금리 시대에 대비, 장기채 투자비중 확대가 필요하다는 증권사들의 마케팅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30년 국고채 인기 ‘뚝’

기획재정부는 이날 국고채 30년물 4000억원에 대한 경쟁입찰을 실시한 결과 최저와 최고 낙찰금리가 각각 3.07%와 3.10%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 금융투자협회 고시금리 3.06%보다 각각 0.01%포인트와 0.04%포인트 높다.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채권가격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응찰률도 다소 저조했다. 총 1조3884억원어치가 신청(응찰률 347.1%)돼 최근의 3~20년물 응찰률(400%대)을 밑돌았다. 최종 낙찰금액은 일반인(개인과 법인) 우선배정물량을 포함해 4104억원이었다. 일반인 배정 물량을 최대 800억원으로 설정했는데 실제 신청금액은 104억원에 그쳤다.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기관들이 지난 9~10월 발행물량 동시 입찰(응찰률 392.5%) 때보다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주요 고객이었던 거액자산가들의 관심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정범식 삼성증권 채권상품팀장은 “많은 거액자산가들이 향후 금리 방향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해 관망하는 분위기”라며 “1년 만기 정기예금 같은 만기가 짧은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후에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국고채 30년물 판매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삼성증권은 지난 9월과 10월에 개인 대상으로만 각각 1500억원 안팎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되사달라” 요청도 이어져

일부 손실을 본 투자자는 판매 증권사에 30년 만기 국고채를 되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 증권사 소매채권 판매 담당자는 “단기 자본차익을 기대하고 30년물에 투자했던 일부 고객들이 채권을 되사달라고 요청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0년물 장외시장 가격은 첫 발행일 이후 최근까지 약 0.5% 정도 떨어졌다. 2042년 12월10일까지 액면 1만원당 연 3.0% 이자를 지급하는 이 채권의 가격은 지난 9월11일 평균 9832원(유통수익률 연 3.044%)에서 이날 9779원(연 3.097%)으로 하락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달까지 국고채 30년물 투자 열기가 지나쳤다고 지적한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미국은 10년과 30년물 금리 차가 1%포인트를 웃도는 데 반해 한국은 0.1%포인트가 채 안 된다”며 “30년이면 통일까지도 고려해야 하는데, 재정 마련을 위한 국채발행과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국채금리가 폭등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절세 매력은 여전”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긴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매력이 충분하다는 지적도 많다. 정 팀장은 “급하게 사려는 고객들이 줄긴 했지만 자산 포트폴리오에 장기 채권을 편입하는 추세는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번 발행물을 합해 국고채 30년물 발행금액이 1조2000억원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인기를 논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세제 혜택은 여전히 거액자산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요소로 꼽힌다. 현재 만기 10년 이상 장기채 이자는 분리과세 신청이 가능해 33% 원천징수로 납세의무가 종결된다. 2013년부터 발행되는 장기채는 3년 이상 보유해야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