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말 일본 지바(千葉)현 이치카와(市川)에 있는 두부 제조업체 산와토유식품. 상품개발 담당자로 일하던 이토신고(伊藤信吾)는 답답했다. 신상품이라고 해봐야 유통업체가 요구한 대로 포장을 바꾸는 정도여서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두부 제조업체들을 하청업체처럼 부리며 원가를 깎는 데만 몰두했다.

이토는 이런 부당한 처우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별화한 두부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간의 노력 끝에 2000년 고급 두부인 ‘오타마두부’를 시장에 내놨다. 이 두부는 당도가 높은 ‘도카치아키다(十勝秋田)’라는 품종의 홋카이도산 콩을 사용한 게 특징이다. 두부값은 200엔으로 정했다. 100엔짜리 두부들이 대부분이던 일본 시장에서는 모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승부수는 적중했다. 하루에 3500모 정도 팔리면 대박으로 평가받던 시절, 오타마두부는 많게는 8000모씩 팔렸다.

2005년 3월 그는 산와토유식품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교토에 ‘오토코마에(男前·남자다운) 두부점’을 차렸다. 오토코마에 제품들은 현재 세븐일레븐 등 일본 주요 편의점과 직영점에서 하루 5만모 이상 팔리고 있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60억엔(약 824억원)의 매출을 올려 최근 5년간 두 배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맛으로 고객 신뢰 확보

오토코마에가 내놓은 제품의 앞면에는 한자로 ‘男(남자)’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두부 코너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격은 300엔으로 일반 두부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출시 이후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해 2006년에는 월간지 닛케이트렌드지가 선정한 일본 히트상품 6위에 올랐다.

성공은 단순히 이미지 효과로 거둔 것이 아니다. 오토코마에 두부는 소비자가 구입한 뒤 다양한 두부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이토는 신제품을 연구하면서 두부의 수분이 천천히 빠지기만 해도 맛이 진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두부를 출시할 때 특수 용기를 고안했다. 바닥이 이중으로 된 용기를 만들어 밑바닥에 두부의 수분이 조금씩 고이도록 한 것. 그는 “두부를 산 뒤 바로 먹으면 담백하게 먹을 수 있고, 다음날은 맛이 깊어져 마파두부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싸지만 ‘특별한 날’ 맛있는 두부를 먹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기꺼이 이 두부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진짜 남자(오토코)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마케팅이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도전정신

오토코마에의 성공 동력은 치열한 품질관리와 창의력에서 나왔다. 우선 두부의 원료가 되는 콩은 다소 비싸더라도 국산으로만 구입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섞어야 하는 간수에도 신경썼다. 대표 제품인 ‘오토코마에 두부’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연두부 제품 ‘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의 경우 미국 하와이산 간수를 사용했다. 일본산도 있었지만 하와이산이 조니에 쓰이는 콩과 궁합이 더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와이산 간수의 영양분이 비교적 풍부하고 콩의 단맛을 잘 살려준다는 점도 고려했다. 덕분에 조니의 당도는 17~18브릭스(당의 함량을 나타내는 단위)로 일반 두부에 비해 5브릭스 정도 높았다.

신제품에 대한 강한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이토는 공장 기계가 가동을 멈추는 새벽에 출근해 매일 100㎏이 넘는 콩을 쓰며 두부 제조 관련 실험을 하곤 했다. 오토코마에 두부는 물론 조니, 싸움고수 물두부, 오조 등 후속 제품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시장에 나왔다.

다만 복잡한 공정을 거치다 보니 다른 경쟁사에 비해 생산 기간이 3~4배 오래 걸리는 일이 많다는 게 단점이다. 오토코마에 두부점은 최소한의 관리직을 제외하고 직원들이 두부의 생산과 판매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교토 본사에 근무하는 100여명 직원 중 80%가 생산·영업 분야에서 일한다.

○두부에 이야기를 담다

오토코마에 일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곳이 식품회사 홈페이지가 맞는지 어리둥절해진다. 회사에서 만든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해 로고송을 부르는가 하면, 캐릭터 그림이나 배경 그림 등을 내려받을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캐릭터 관련 소설과 두부 요리법도 업데이트한다. 이토는 로고송을 직접 작사·작곡하기도 한다.

이는 ‘두부에도 이야기(스토리텔링)가 필요하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두부를 만드는 사람이 가진 세계관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준다면 보다 충성스런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캐릭터는 대부분 ‘엉클 밥’이라는 미술 작가가 기획했다. 이 작가는 오토코마에 세계를 그림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통해 회사 매출에 기여하고 있다. 오토코마에는 자사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男’자가 크게 새겨진 앞치마 등과 같은 상품을 판매해 매달 100만엔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다른 업종과의 공동 사업도 자주 벌인다. 크로켓 전문 식품업체인 ‘고베고로케’와 함께 두부 커틀릿을 출시한다거나 완구업체 ‘반다이’와 조니, 오타마 등의 두부 모양을 본뜬 열쇠고리를 뽑기용으로 내놓는 식이다.

최근에는 ‘교토 채식주의자 페스티벌’ ‘레트로 록 페스티벌’ 같은 지역 음악축제를 적극 후원하고 있다. 축제에 참가해 두부 시식 코너 등을 만들어 제품 판촉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오토코마에의 성공은 돈없이 시작한 무명의 록밴드가 화려한 의상으로 주목받고, 기대 이상의 실력으로 팬들을 매료시키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