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지역 일정이 겹쳐 우연히 마주쳤지만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채 서로 자리를 피했다. 최근 야권에서 후보 단일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숙명적 대결을 벌여야 할 두 후보 간 신경전도 점차 뜨거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 후보는 25일 오전 10시 서울에서 출발한 부산행 KTX 123열차를 타고 낮 12시20분께 울산(통도사)역에 도착했다. 문 후보도 이날 동대구역에서 안 후보가 탄 열차에 올라 울산역에 함께 내렸다. 안 후보는 8호차 일반석을, 문 후보는 3호차 특실을 이용했다. 안 후보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원을 방문하기 위해, 문 후보는 지역 선대위 발족식 참석차 울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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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두 후보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승강장에 먼저 내린 문 후보는 역사 밖으로 이동하던 중 사진 촬영 등을 요청하는 시민들에 둘러싸였다. 안 후보는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그냥 지나쳐 갔다. 이에 앞서 문 후보 역시 동대구역에서 열차에 오른 직후 안 후보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객실이나 승강장에서 안 후보를 찾지 않았다.


두 후보의 이 같은 행동은 최근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양측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 정당 국고보조금 감축, 중앙당 폐지 등 안 후보의 정치쇄신안을 놓고 두 후보는 직접 날선 공방을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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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그게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는 방안인지 의문이 있고 그렇게 국민과 정치권의 동의를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과연 현실적인 방안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이에 안 후보는 “국민과 정치권의 생각이 엄청난 괴리가 있다”며 “정치권부터 솔선수범해서 내려놓는 자세가 지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고 맞받았다.

양 후보 캠프 간 대리전도 격화되고 있다. 문 후보 측 박영선 선대위원장은 25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의원 정수를 줄이면 진입장벽이 높아져 정치 신인의 진출이 어렵고 대기업의 로비, 자본의 로비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안 후보 측 정치혁신포럼에서 활동 중인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CBS라디오에 나와 “국회 규모가 작아도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강한 권한을 갖는다면 일을 제대로 하는 국회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울산=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