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가 수준이 여실히 드러나는 계절이다. 대선이 6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독백들만 있을 뿐 TV토론 한번 치르지 않는 정치판이다. 경제 침체와 장래 먹거리 문제에 대해선 대선후보 모두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나누어먹기 공약과 퍼주기 이슈만 난무한다. 국내에서 강의하는 어느 외국인 교수의 지적처럼 ‘이상하게 칙칙한(oddly dull)’ 대선이다. 한국인의 역동성이나 성실성, 은근과 끈기가 실종된 것이 그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한 성장경제 체제에 대한 정치권의 이유없는 불만과 반발도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려고 위협한다고 적을 정도다. 물론 이 말은 재벌개혁과 소위 경제민주화를 염두에 둔 말이다. 미국 대선처럼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국민들의 선택을 돕는 선거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서는 유력한 세 후보의 정책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사판이다. 서로가 베끼기에 바쁘다. 그러니 네거티브 공세만 넘쳐난다. 지연과 혈연, 학연으로 얽힌 조선조 붕당정치가 정확하게 되살아난 꼴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틈새에서는 온갖 이기주의가 횡행한다. 공정성을 추구해야 할 언론들까지 나서 지역 사업이나 숙원 사업을 흥정하려 든다. 각종 이익단체들도 요구사항을 내걸고 투쟁한다. 정부 관료들마저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돼 조직개편이나 나중에 자신이 차지할 보직에만 신경쓴다. 한철 대목을 노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은 머릿수만도 500명이 넘는다. 국가의 방향을 탐색하고 진로를 선택한다는 대선은 이미 실종이다.

병폐의 원인조차 진단하기 어렵다. 닭이냐 달걀이냐다. 지도자도 참모도 노선과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 정당의 기능과 정치의 역할은 실종이다. 이글거리는 권력욕만 넘친다. 1990년 3당 합당을 할 때 국민소득은 5659달러였다. 2만3000달러에 달하는 지금도 정치는 변한 게 없다. 오히려 퇴행이다. 정치가 사회발전의 장애물이다. 자승자박의 3류 사회 증후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