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 이끌던 'CEO형 총장' 이젠 옛말… 달라진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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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잔뼈 굵은 교수들이 총장 되는 추세
대학 총장들의 면면이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 개혁을 이끌며 주목받던 최고경영자(CEO)형 총장들이 사라지고 학교에서 잔뼈가 굵은 교수가 총장이 되는 모습이다.
22일 한경닷컴이 최근 3개월간 새로 총장이 취임한 4년제 대학 10곳을 분석한 결과 '관리형 총장'이 대세로 떠올랐다. CEO형 총장이 대학사회에 '충격 요법'을 시행한 후 안정기에 접어들자 학내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교수들이 대학 운영을 맡는 추세다.
최근 취임한 송희영(건국대) 임해철(홍익대) 신구(세종대) 황선혜(숙명여대) 이정구(성공회대) 최성을(인천대) 김영섭(부경대) 권오창(동아대) 박태학(신라대) 이계영(동국대 경주) 총장의 공통점은 학내 주요 보직을 역임한 해당 대학 교수 출신이란 점이다.
◆각광받던 CEO형 총장 사라졌다
한동안 대학가에선 CEO형 총장을 비롯한 외부 영입 총장들이 각광을 받았다.
2003년 어윤대 현 KB 금융지주 회장이 고려대 총장을, 2005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 출신 손병두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이 서강대 총장을 맡으며 CEO형 총장 시대를 열었다.
2006년 취임한 서남표 KAIST 총장은 교수 정년보장(테뉴어) 제도를 뜯어고치며 한국사회 대학 개혁을 주도했다. 2007년엔 '혁신 전도사' 라 불리는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동국대 총장으로 선임되며 고객만족(CS) 경영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들은 교수사회 개혁을 비롯해 성과 평가, 인센티브 제도 등 대학 운영에 경영 개념을 접목시켜 '교수 철밥통'으로 대변되던 대학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지만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다.
어 회장은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고려대 교수들의 반발로 총장 연임이 좌절됐다. 손 이사장과 오 전 장관도 총장 재임 기간 동안 교수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현 KAIST 수장인 서 총장 역시 사실상 퇴진이 확정됐다.
◆'위기 관리, 내부 승진' 새 트렌드
최근 새로 대학을 이끌게 된 신임 총장들은 학교 사정을 잘 아는 해당 대학 교수 일색이다. 외부 영입 케이스는 10개 대학 중 한 곳도 없었다.
9월1일 같은 날 취임한 송희영 건국대 총장과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은 모두 풍부한 보직 경험과 학내 입지를 바탕으로 학교를 안정시킬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여기엔 특수한 학교 사정이 작용했다. 전임인 김진규 건국대 총장은 올 5월 중도 사퇴했다.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은 이사회와 법정 공방을 벌였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으로 외부 영입 사례인 김 전 총장은 학내 구성원과 마찰을 빚었다. 방송 출연 등으로 이름을 알린 한 전 총장은 학교 법인과의 갈등을 원만히 풀지 못했다.
건국대를 졸업한 송 총장은 3차례 기획조정처장을 맡았고 부총장을 지낸 학교 원로. 때문에 건국대는 "풍부한 대학 행정 경험에 바탕해 학교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 총장도 학생처장과 문과대학장, 교육대학원장 등을 지낸 데다 모교 출신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김영종 총장 사퇴 뒤 이달 5일 동국대 경주캠퍼스 새 총장으로 선임된 이계영 교수도 비슷한 경우다. 이 총장은 교무처장과 공학대학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낸 바 있다.
◆'학교통' 장점… 교수 프라이드 감안
지난 7월 선임된 신구 세종대 총장은 교무처장과 부총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영입된 박우희 전 총장과 재단 이사회가 불협화음을 빚자 학내 교수 출신을 새 총장으로 선임했다. 특히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은사인 박 전 총장과 재단이 대립각을 세워 학교 입장에선 불편했다는 후문이다.
권오창 동아대 총장 역시 부총장과 기획처장 등을 역임했다. 전임 조규향 총장이 교육부 차관 출신으로 한국방송통신대·서울디지털대·부산외대 총장 등을 지낸 외부 영입 인사인 데 반해 권 신임 총장은 학내 보직을 두루 맡은 '학교통'이다.
임해철 홍익대 신임 총장은 교무처장과 학사 담당 부총장을 지냈다. 이외에도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은 교목실장, 최성을 인천대 총장은 학생처장, 김영섭 부경대 총장은 교무처장, 박태학 신라대 총장은 산학협력단장 등의 학내 보직을 맡아 학사 행정 경험을 쌓은 뒤 총장에 취임했다.
이처럼 총장 선임 트렌드가 달라진 것은 학내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대학 운영을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간 외부 영입 또는 CEO형 총장이 대학사회에 변화 메시지를 던졌다면 이젠 구성원 간 소통, 화합 등을 강조할 시점이란 얘기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 관계자는 "최근의 변화엔 교수들의 프라이드도 영향이 있을 것" 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외부 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면 '최고의 지성 집단'이란 교수들의 자부심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며 "대학은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는 반발도 커서 같은 학교 교수가 총장이 되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로 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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