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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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는 돈이 아닌 '시간의 가격'
인위적 조작때 혼란 생기는 까닭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
인위적 조작때 혼란 생기는 까닭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공정하며, 더 나아가서는 정의에 반하는 불평등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다.
수세기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자를 ‘돈의 가격’이니 ‘돈을 빌려줌으로써 발생하는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이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특히 자본주의를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회’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자를 설명하기 전에 퀴즈 하나. 동일한 주택을 현재 소유하는 것과 10년 후에 소유하는 것 중 선택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현재 소유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10년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내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통 미래에 재화를 소비하기보다는 현재에 재화를 소비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사람들이 미래재화보다는 현재재화를 더 선호하는 것을 ‘시간선호’(time preference) 라고 한다.
이자는 바로 이 시간선호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자는 현재재화와 미래재화의 가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시간에 대한 가격’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자는 돈(화폐)과는 상관이 없고, 돈이 없는 경제에서도 존재한다. 이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특성도 아니고, 은행과 대여자의 탐욕의 결과도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이자를 돈의 가격이나, 돈을 빌려줌으로써 발생하는 수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소비와 투자를 포함한 모든 교환행위가 돈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돈은 기본적으로 교환의 매개체다. 식품점에서 채소와 우유를 사고 돈을 건네고, 직장에서 일을 한 후 고용주로부터 임금으로 돈을 받는다. 또 현재 소비하거나 투자하고 싶지만 갖고 있는 자금이 없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야 한다. 그 자금을 빌리는 것은 곧 돈을 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는 것을 빌리는 것이다. 그 대가로 미래 특정일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의 차용증서를 대여자에게 준다. 상환일에 차용증서에 명시된 금액만큼이 차입자의 미래소비에서 감소한다. 그래서 ‘돈을 빌리는 것’은 실제로는 미래재화를 현재재화와 교환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현재 소비할 수 있는 재화를 포기하고 나중에 소비할 재화를 얻는 차용증서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실제로는 현재재화를 미래재화와 교환한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차입자와 대여자 모두 이익을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활수준을 높이고 싶어한다. 현재 소비를 줄여 미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돈을 빌려 주려고’ 하고, 현재 재화를 갖고 있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득을 늘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미래에 더 많은 재화를 누릴 수 있다고 전망하는 사람은 ‘돈을 빌리려고’ 한다. 대부시장은 그렇게 생겨나고 여기서 결정된 것이 시장이자율이다.
돈과 이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금융억제와 같은 비우호적인 금융환경을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 이뤄지는 금융거래는 위험부담이 크다. 위험부담으로 인해 이자율이 올라가고 사람들의 후생은 감소한다.
사실 자연자원, 노동, 자본재, 소비재 등은 서로 분리돼 있다. 이 분리돼 있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시간에 따른 생산 활동이다. 이자는 시간선호로부터 나오고, 모든 생산 활동은 시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는 이자율을 예의 주시한다.
오늘날의 많은 금융문제와 경제혼란도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인위적인 금리조작에서 비롯되고 있다.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위해서는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jwan@khu.ac.kr >
수세기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자를 ‘돈의 가격’이니 ‘돈을 빌려줌으로써 발생하는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이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특히 자본주의를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회’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자를 설명하기 전에 퀴즈 하나. 동일한 주택을 현재 소유하는 것과 10년 후에 소유하는 것 중 선택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현재 소유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10년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내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통 미래에 재화를 소비하기보다는 현재에 재화를 소비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사람들이 미래재화보다는 현재재화를 더 선호하는 것을 ‘시간선호’(time preference) 라고 한다.
이자는 바로 이 시간선호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자는 현재재화와 미래재화의 가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시간에 대한 가격’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자는 돈(화폐)과는 상관이 없고, 돈이 없는 경제에서도 존재한다. 이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특성도 아니고, 은행과 대여자의 탐욕의 결과도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이자를 돈의 가격이나, 돈을 빌려줌으로써 발생하는 수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소비와 투자를 포함한 모든 교환행위가 돈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돈은 기본적으로 교환의 매개체다. 식품점에서 채소와 우유를 사고 돈을 건네고, 직장에서 일을 한 후 고용주로부터 임금으로 돈을 받는다. 또 현재 소비하거나 투자하고 싶지만 갖고 있는 자금이 없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야 한다. 그 자금을 빌리는 것은 곧 돈을 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는 것을 빌리는 것이다. 그 대가로 미래 특정일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의 차용증서를 대여자에게 준다. 상환일에 차용증서에 명시된 금액만큼이 차입자의 미래소비에서 감소한다. 그래서 ‘돈을 빌리는 것’은 실제로는 미래재화를 현재재화와 교환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현재 소비할 수 있는 재화를 포기하고 나중에 소비할 재화를 얻는 차용증서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실제로는 현재재화를 미래재화와 교환한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차입자와 대여자 모두 이익을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활수준을 높이고 싶어한다. 현재 소비를 줄여 미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돈을 빌려 주려고’ 하고, 현재 재화를 갖고 있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득을 늘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미래에 더 많은 재화를 누릴 수 있다고 전망하는 사람은 ‘돈을 빌리려고’ 한다. 대부시장은 그렇게 생겨나고 여기서 결정된 것이 시장이자율이다.
돈과 이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금융억제와 같은 비우호적인 금융환경을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 이뤄지는 금융거래는 위험부담이 크다. 위험부담으로 인해 이자율이 올라가고 사람들의 후생은 감소한다.
사실 자연자원, 노동, 자본재, 소비재 등은 서로 분리돼 있다. 이 분리돼 있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시간에 따른 생산 활동이다. 이자는 시간선호로부터 나오고, 모든 생산 활동은 시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는 이자율을 예의 주시한다.
오늘날의 많은 금융문제와 경제혼란도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인위적인 금리조작에서 비롯되고 있다.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위해서는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