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에게 듣는다] "환율 1100원 곧 무너질 듯…하락 속도는 둔화"
원·달러 환율이 연일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째 최저점을 경신했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1103원30전)은 종가 기준으로 작년 9월9일 1077원30전 이후 최저치다.

이건희 외환은행 선임딜러(38·사진)는 이날 “조만간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1100원이 무너지더라도 환율 하락 속도는 지금보다 늦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100원 이하에서의 환율 지지선은 1095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딜러는 서울 외환시장을 통한 국내 하루 달러 거래량의 10% 정도를 책임지고 있다. 최근 서울환시의 하루 달러 거래량이 100억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10억달러가량이 그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국내 외환딜러 중 가장 ‘큰손’인 그에게 환율 전망과 대응 방안 등을 들었다.

#글로벌 달러 약세

이 딜러는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은 글로벌 달러 약세에 따른 것으로 진단했다. “그동안 유럽 재정위기가 원·달러 환율의 가장 큰 지지 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이 유럽중앙은행(ECB)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란 예상이 시장에 퍼지면서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죠.”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무제한 국채 매입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위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안전자산으로서 달러를 선호했던 투자자들의 ‘달러 선호’ 현상이 약화되면서 달러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 딜러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을 비롯해 이머징마켓의 주식과 채권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원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금융위기 극복의 ‘우등생’이라는 투자자들의 평가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딜러는 “해외 플랜트 건설 수요 증가 등에 따라 국내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기업들이 보유한 외화가 늘고 있다”며 “이들 기업이 영업이익을 지키기 위해 잇따라 달러를 매도하고 있는 것도 원·달러 하락의 큰 이유”라고 진단했다.

달러 가격이 반등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앞다퉈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1095원이 다음 지지선

이 딜러는 조만간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1100원 이하에서는 하락 속도가 지금보다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다. “1100원이 무너지면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높아집니다. 또 환율 하락에 따라 국내 에너지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딜러는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이하로 내려가더라도 시장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이지만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1100원 이하에서의 다음 지지선은 1095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1090원대 초반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마지노선 정해 환헤지해야

이 딜러는 수출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을 지키려면 철저한 헤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선물환이나 옵션 등을 통해 환율 추가 하락에 대해 미리 방어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수출기업들은 1~2원을 더 욕심부리려다 목표했던 이익 수준이 아예 무너져 버릴 수 있다”며 “영업이익을 지킬 수 있는 환율의 마지노선을 계산해 미리 헤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딜러는 이어 “수입업체들도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적정 환율 범위를 미리 판단하고, 이 범위에 들어오면 일부라도 미리 결제에 필요한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해외로 자녀 유학비를 보내야 하는 경우 등 달러가 필요한 개인들은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선물환 등을 통해 환위험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